[O2/커버스토리]X세대의 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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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5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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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대중문화 종결자로 급부상… 생산-소비 쥐락펴락


그들이 돌아왔다.

기성세대가 도대체 이해하지 못하겠다며 혀를 내둘렀던 그들. 규정하기는 어렵지만 발칙한 상상력과 주체 못할 끼 때문에 문제적 세대로 찍혔던 그들. 지금까지 봐왔던 인종과는 완전히 다른 별종이라며 신인류, 신세대로도 불렸던 그들. 바로 엑스(X)세대다. 1990년대 전반기에 10대 후반∼20대 중반이었던 X세대는 2011년 현재 한국 대중문화 공간에서 활짝 피어나고 있다. 1968∼1975년에 태어난 이들 X세대는 대중문화의 생산자와 소비자로서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한다. 그들이 없다면 지금 이곳의 대중문화는 제대로 설 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 X세대는 타전한다. “대중문화의 종결자로 화려하게 귀환했다. 오버.”

○ 여의도와 충무로의 대세

올해 1월 KBS 2TV에서 시청률 20%대를 육박하며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드림하이’. 아이돌을 꿈꾸지만 2% 부족한 예술고 학생들이 자신의 단점을 극복하며 성장하는 이야기를 다룬 이 드라마는 X세대의 파워를 그대로 보여준다. 드라마 제작은 매니지먼트사 키이스트의 대주주 배용준(1972년생)과 JYP엔터테인먼트 프로듀서 박진영(72년생)이 맡았다. 연출을 한 이응복 PD는 72년생이고 작가 박혜련 씨는 71년생이다. 사실상 X세대 동년배끼리 북 치고 장구 친 대표 사례다. 장안의 화제인 MBC 드라마 ‘최고의 사랑’은 박홍균 PD, 주연배우 차승원 모두 70년생이며 작가 중 한 명인 홍정은 씨는 74년생이다. ‘까도남(까칠한 도시 남자)’ 신드롬을 불렀던 SBS 드라마 ‘시크릿가든’을 연출한 신우철 PD도 X세대고, 작가 김은숙 씨는 73년생이다. 지난해 뭇 여성 사이에 ‘짐승남’ 열풍을 몰고 온 KBS 드라마 ‘추노’의 곽정환 PD는 72년생, 작가 천성일 씨는 71년생이다.

과거 같으면 엄마나 이모 역할을 맡으며 뒷방마님으로 물러났을 X세대 여배우들의 약진도 눈부시다. ‘대물’의 고현정(71년생), ‘스타일’의 김혜수(70년생), ‘로열패밀리’의 염정아(72년생), ‘나쁜 남자’의 오연수(71년) 등은 나이 마흔에 연하의 꽃미남을 상대 배역으로 하는 주연을 꿰찼다. 하희라(69년생), 신애라(69년생)도 꿋꿋하게 헤로인을 맡았다. 예능계에서 강호동(70년생), 유재석(72년생)의 아성은 굳건하다. 70년생 박명수와 김구라가 없으면 휘청거릴 프로그램도 한둘이 아니다.

무엇보다 X세대의 파워가 두드러지는 현장은 대중음악계다.

3대 메이저 연예기획사인 JYP, SM엔터테인먼트, YG엔터테인먼트(이상 알파벳 순)의 대표와 주요 인물은 모두 X세대다. JYP의 정욱 대표가 71년생, SM의 김영민 대표와 YG 양현석 사장은 각각 70년생, 69년생이고 YG 양민석 대표이사는 73년생이다. 이들 회사 소속이 아닌 유명 가수들의 제작자나 매니저도 상당수가 70년대 초반에 태어난 사람들이다. JYP 정 대표는 “(방송의 중심) 여의도는 지금 71년생(70년대 초반 출생자)이 대세”라고 단언한다.

영화계도 못지않다. 이번 주 관객 300만 명을 돌파하며 데뷔작 ‘과속스캔들’에 이어 연타석 홈런을 날린 ‘써니’의 강형철 감독은 74년생이다. 지난해 개봉한 한국영화 가운데 흥행 1위를 기록한 ‘아저씨’의 이정범 감독과 600만 명이 본 ‘전우치’의 최동훈 감독은 71년생이고, 300만 명이 본 ‘시라노; 연애조작단’의 김현석 감독은 72년생, 전작 ‘추격자’에 이어 ‘황해’로 칸 영화제에 두 번 연속 진출한 나홍진 감독과 눈물콧물 빼는 감동을 전한 ‘하모니’의 강대규 감독은 74년생이다.

○ 풀림, 유연함 그리고 디지로그

X세대는 인구통계로 볼 때 2차 베이비붐 세대(1968∼74년생)와 거의 일치한다. 6·25전쟁 직후 폭발적으로 출생률이 높아지던 1차 베이비붐(1954∼63년) 세대가 한 해 70만 명 안팎이 태어났다면, 2차 베이비붐 세대 때는 90만∼100만 명이 한 해 태어났다. 이후부터는 1년당 70만 명대 이하로 떨어진다. X세대가 현재 대중문화를 좌지우지하는 이유를 여기서 찾을 수도 있다. 수가 많기 때문에 그만큼 능력자도 많이 배출되었다는 해석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스마트폰과 태블릿PC가 대세인 최근 1∼2년만큼 디지로그(Digilog·Digital+Analog)가 대중문화의 코드로 두드러진 때는 드물다. 디지털 기술에 아날로그 정서를 더하지 않으면 팔리지 않는 시대가 된 것이다.  
▼ 해금의 혜택 만끽하고 디지로그 ‘양수겸장’ ▼

지난해와 올해 대중문화의 가장 큰 화두인 ‘슈퍼스타K2’와 ‘나는 가수다’를 보자. X세대에게는 ‘영원한 젊음의 상징’인 가수 임재범이 32년 전 윤복희가 불렀던 ‘여러분’을 부른다. 갓 스물을 넘긴 허각, 장재인이 이문세, 신승훈의 노래를 부른다. 여기까지는 아날로그 감성이다. 하지만 그것만일까. 영화 ‘써니’의 강형철 감독은 “만약 TV가 HD 같은 고화질이 아니고, 고도의 디지털 음향기술이 뒷받침되지 않았다면 그런 감동을 자아낼 수 있었을까”라고 반문한다.

디지로그 코드에 가장 잘 적응할 자세가 돼 있던 사람들이 X세대다. 이들은 어렸을 때는 흙바닥에서 딱지, 구슬, 고무줄을 가지고 놀았다. 그러다 늦어도 중학생이 되면서 컴퓨터를 접한 뒤 거기에 빠지고 그것을 갖고 놀았다. JYP 정 대표는 “아날로그와 디지털이 정확하게 중첩하는 지점이 바로 우리 세대다. 대중문화적으로 가장 좋은 시대에 태어나고 자랐다”고 말한다. 이후 속속 등장한 PC통신, 인터넷, 삐삐, 휴대전화 같은 디지털 문명의 이기에 가장 빨리 적응한 것도 이들이다.

X세대가 원더걸스, 소녀시대, 빅뱅 같은 디지털 대중문화시대의 첨단이라 할 아이돌로 무장한 K-pop으로 해외시장을 공략하는가 하면, 아날로그 감성의 최고봉이라 할 통기타 가수들을 다시 무대에 올릴 수 있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세시봉 콘서트를 기획한 MBC의 신정수 PD도 1970년생이다. 71년생 노도철 PD가 연출하는 MBC드라마 ‘반짝반짝 빛나는’의 주제가 ‘너의 마음을 내게 준다면’은 아이돌 그룹 걸스데이가 부른다. 원래 이 노래는 1993년 최연제가 불렀다. 전형적인 디지로그다. X세대 ‘삼촌팬’ ‘이모팬’은 아이돌 상품을 소비하면서 ‘나는 가수다’의 음원을 내려받을 만큼 유연하다.

X세대가 청소년기와 20대를 보낸 80, 90년대는 ‘풀림’의 시대였다. 통행금지가 풀렸고, 정치적인 이유 등으로 묶여 있던 금지곡이 풀렸다. ‘지옥의 묵시록’같이 수입이 되지 못하던 외국영화가 풀렸다. 그리고 통일성과 억압의 상징이던 교복에서 풀려났다. 71, 72년생은 중고교 6년 동안 한 번도 교복을 입지 않았고 다른 X세대 중에도 그 6년 내내 교복을 입었던 사람은 거의 없다. 자율을 접한 첫 세대다. 대학을 다닐 때는 정치적인 속박에서 윗세대보다 상대적으로 자유로웠다.

80, 90년대는 고도성장과 사회·정치적 해금(解禁)을 바탕으로 문화가 폭발하고 범람했다. 80년대 미국의 팝음악에 흠뻑 젖었던 이들은 90년대 가요의 쓰나미(지진해일)를 불렀다. 90년대 중후반 FM라디오에서 그 많던 팝음악 프로그램은 하나둘 자취를 감췄다. 구직난을 모르던 386세대가 고도성장의 열매를 직접적으로 따먹었다면 X세대는 그 부산물인, 그러나 배보다 더 큰 배꼽인 문화를 양껏 섭취했다.

○ 10년 뒤가 궁금하다


CJ E&M의 케이블 음악채널인 KMTV는 요즘 개편 작업에 한창이다. 주요 대상은 바로 40대 초중반의 X세대. 그동안 억눌려왔던 음악적 감성이 최근 뻥 뚫린 이들에게 맞춤형 감동의 무대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CJ E&M 방송사업부문 김태성 국장(69년생)은 “옛 음악을 재조명하고, 따라 부를 수 있는 음악을 편성하는 채널로 만들어보자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아이돌 음악채널로 인식되는 케이블채널 Mnet도 대상을 확장하기 위한 모델을 만들 전략을 세우고 있다. X세대 부모가 초중학생 자녀를 데리고 함께 보러 올 수 있는 공연도 계획하고 있다.

영화와 공연계에서도 X세대 가족이 주말에 함께 볼 수 있는 작품을 물색하고 있다. 10대 초반 어린이를 주인공으로 한 ‘빌리 엘리어트’가 흥행 성적이 썩 좋은 것은 아니지만 장기간 공연하고 있는 것이나, 미국 전통 뮤지컬 ‘브로드웨이 42번가’가 깜짝 흥행에 성공한 이유도 바로 X세대 가족관람 덕분이다. 마흔 안팎의 여주인공이 연하의 남성과 사랑에 빠지는 TV드라마가 최근 2, 3년 동안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것도 주요 타깃 시청층인 X세대 주부들의 낭만을 대변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X세대가 대중문화의 흐름을 좌지우지하다보니 각 현장에서는 그 아래 세대의 신선한 충격을 접할 기회가 점점 사라진다는 염려도 나온다. 서태지(72년생)가 ‘난 알아요’로 가요의 혁명을 일으켰을 때 고작 20세였고, 류승완 감독(73년생)이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로 평단을 놀라게 했을 때는 26세였다.

대중문화평론가 이문원 씨(75년생)는 “현재 20대에게 대중문화란 소비하는 상품에 불과하다. 새로운 뭔가를 만들어내려는 욕구가 작다”고 분석한다. 그러나 지금의 10대, 20대도 나름의 문화를 진화, 발전시킬 것이라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X세대와의 경쟁이 약간 버거울 따름이라는 것이다.

JYP 정 대표는 자신의 세대가 대견하다고 말한다. 386세대라는 거대한 윗세대에 눌리지 않고, 도전과 경쟁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지금에 이른 X세대가 대견하다고 한다.

“저는 한창 일할 나이인 지금 우리 세대가 앞으로 10년 뒤 사회의 중추가 됐을 때 한국이 어떤 모습이 될지 아주 궁금합니다. 더 세련되면서도 많은 경쟁을 통해 실력을 갖췄을 때 말이죠. 버락 오바마 같은 대통령이 나올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 X세대 ::

1970년을 전후해서 태어나 1990년대 초중반에 ‘나는 나’를 주장하던 세대를 일컫던 말. 당시 이들은 10대 중반∼20대 중반의 나이였다. 기성세대의 가치관을 부정하고 탈(脫)정치, 감성 우선을 지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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