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커버스토리]성공行 티켓, 책상정리의 위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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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5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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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나가는 사람들의 습관 추적해보니

혼란에 빠진 책상은 그 주인의 머릿속이 뒤죽박죽 헝클어져 있다는 것을 드러낸다. 이런 상태에선 일의 능률이 오를 수가 없다. 책상정리는 성공으로 가는 가장 쉽고 확실한 출발점이다. 동아일보 DB
혼란에 빠진 책상은 그 주인의 머릿속이 뒤죽박죽 헝클어져 있다는 것을 드러낸다. 이런 상태에선 일의 능률이 오를 수가 없다. 책상정리는 성공으로 가는 가장 쉽고 확실한 출발점이다. 동아일보 DB
“처음엔 잘 몰랐는데 나중에 보니 확실히 표가 나더군요. 사무실이나 책상 정리를 잘 안 하는 사람들은 결국엔 승진 경쟁에서 밀렸어요. 거의 예외가 없었습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사무실 정리가 잘 안된 사람은 일처리나 머릿속도 그런 것 같았어요.” 윤미자 KAIST MBA 디렉터는 대형 법률회사에 다니던 때의 경험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회사원 이모 씨(28·여)는 항상 일에 쫓겼다. 해도 해도 일은 끝이 없었다. 그는 언제나 다른 동료보다 30분 일찍 출근해 늦게까지 책상에 앉아 있었지만 성과가 나지 않았다. 하는 일마다 실수가 잦고 상사에게 꾸지람만 들었다. 자연스레 시중에 나와 있는 이런저런 자기계발서에 눈길이 갔다. 하지만 ‘뜬구름 잡는 이야기’란 생각만 들었다. ‘일 잘한다’는 평가를 받는 친한 동료에게 노하우를 물어봤다. “일을 열심히만 하면 성과는 나오게 돼 있다”는 무정한 대답만 돌아왔다.

그럴수록 자기계발서에 더욱 집착했다. 끝까지 읽지도 않은 책들이 집 안에 쌓여만 갔다. 그러다 책 한 권을 만났다. 성공하려면 책상 정리를 잘하라는 내용이었다. 처음엔 별 기대 하지 않고 집어 들었다. 하지만 책 속 등장인물들의 사연이 마치 자기 이야기 같았다. 내용이 따라 하기에 어렵지도 않았다.

그녀는 책상을 닦기 시작했다. 책상 위에 높게 쌓여 있던 서류들도 정리했다.

“일에 쫓길 때는 책상 위가 자료와 서류들로 뒤죽박죽이었어요. 항상 패닉 상태인 제 머릿속처럼요. 그런데 책상 위를 깨끗이 하면서부터 깨닫게 됐어요. 지저분한 환경에서 일을 하면 집중도 잘 안되고, 마음만 더 초조해져 결국 실수를 할 수밖에 없더군요. 책상 정리를 한 뒤에는 정말 거짓말처럼 머리가 맑아지더라고요. 아무리 일에 쫓겨도 침착하게 중요한 일들을 빠뜨리지 않고 하나씩 처리할 수 있게 됐죠. 상사한테도 꾸지람 대신 칭찬을 듣기 시작했어요.”

이 씨만이 아니다. 정리 컨설턴트 윤선현 씨(35)가 운영하는 네이버 카페 ‘정리력’(cafe.naver.com/2010ceo)에서 진행하고 있는 ‘정리력-100일 프로젝트’에 참여한 사람들도 ‘책상 정리의 힘’을 경험했다. 서선영 씨(30·여)는 “서류를 찾으러 다니는 골치 아픈 과정이 없어지니까 업무 시간이 줄어들고, 확실히 일하고자 하는 의욕도 더 생긴다”고 말했다. 김슬아 씨(27·여)도 “어지러운 책상 위를 깔끔하게 정리하면 기분이 새로워지고 머릿속도 깨끗이 정리가 되는 것 같다”고 밝혔다.

○ 경력 갉아먹는 지저분한 책상

“너는 얼굴은 예쁜데 책상은 왜 저 모양이냐?”

이 씨는 본격적으로 책상 정리를 하기 전 주변 동료들에게 이 말을 자주 들었다. “예쁜 얼굴을 깎아먹는다”는 말까지 나왔다. 실제로 지저분한 책상은 일의 능률을 떨어뜨리고 주변 사람들에게 안 좋은 인상을 심어준다.

새뮤얼 고슬링 미국 텍사스대 교수의 연구 결과가 그 증거다. 고슬링 교수는 학생들의 자취방과 기숙사 방 83개와 기업 사무실 94개를 조사했다. 그 결과 지저분한 업무(생활) 공간을 가진 사람들이 깨끗한 공간을 가진 사람들보다 △효율적이지 못하고 △체계적이지도 못하며 △창의력도 떨어진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더 가슴 아픈 사실은 동료들도 자기 공간이 지저분한 사람들을 무능하고 창조적이지 못한 사람으로 인식한다는 점이다.

미국에서 200여 개의 신문에 칼럼을 기고하는 경력 관리 전문가 페넬로페 트렁크 씨는 자신의 블로그(blog.penelopetrunk.com)와 칼럼을 통해 끊임없이 강조한다.

“지저분한 책상은 당신의 경력을 교묘하게 갉아 먹는다. 책상이 지저분하다면 누구도 당신에게 중요한 일을 맡기려 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면 그 일이 당신의 책상에 쌓인 서류 더미 안으로 사라져 버려 다시는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회사원 조지원 씨(39·여)는 책상 정리를 자신의 이미지 메이킹 방법으로 사용해 왔다. 3년에 한 번씩 부서를 옮겼지만, 길에서 함께 일했던 사람들이 우연히 만날 때마다 반갑게 인사를 해 주는 것도 ‘깔끔한 책상’ 덕분이란다. “10년 넘게 직장 생활을 하면서 느낀 것은 외모뿐만 아니라 내 책상도 또 하나의 얼굴이란 사실이에요. 누구나 볼 수 있는 사무실 책상은 가장 손쉽게 좋은 이미지를 구축해 주는 수단인 것 같습니다.”

지저분한 책상 등 업무공간은 심지어 업무상 실수나 건강상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이는 대규모의 사무 환경 연구를 통해 과학적으로도 입증됐다. 미국의 심리학자 캐서린 타깃에 따르면 난잡한 작업 환경에서 일하는 사람은 심박수와 혈압이 상승하고 숨이 차게 된다. 뿐만 아니라 머리와 어깨에 통증이 생기기 쉽다. 이런 사람은 정서적으로도 안정이 안 돼 동료나 부하 직원에게도 화를 잘 내게 된다고 한다.

○ 대통령과 CEO들의 깔끔한 책상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책상 위에는 항상 서류 몇장과 전화기 하나 만이 달랑 놓여 있다. 데일리메일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책상 위에는 항상 서류 몇장과 전화기 하나 만이 달랑 놓여 있다. 데일리메일
2009년 미국 백악관이 공개한 사진 한 장이 화제를 모은 적이 있다. 집무실에서 브리핑 자료를 검토하는 버락 오마바 대통령을 향해 막내딸 사샤(당시 8세)가 살금살금 기어가는 모습을 담은 사진이었다. 대통령 가족의 소박함과 가정적인 모습은 보는 이들의 가슴을 흐뭇하게 만들었다.

동시에 오바마 대통령의 책상도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그의 책상은 1879년 빅토리아 영국 여왕이 러더퍼드 헤이스 19대 미국 대통령에게 선물한 것이다. 유서 깊은 책상 위에는 달랑 전화기 한 대와 서류 몇 장이 놓여있을 뿐이었다.

같은 책상에 앉았던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34대)도 말끔한 책상 정리로 유명했다. 그는 책상 위를 ‘지금 당장 실행할 것’ ‘지시할 것’ ‘도움 받을 것’ ‘버려야 할 것’ 등 4개 영역으로 나눠 정리했다. 일이 끝나면 그의 책상 위에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이렇게 간단한 방법을 통해 업무 효율을 극대화시켰다.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들도 마찬가지다. ‘성공하는 CEO들의 일하는 방법’(스테파니 윈스턴·2005년)에는 책상을 깔끔하게 정리하는 CEO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 책상 어지럽게 두는 건 ‘무능력’ 광고하는 셈 ▼

“미국 포켓몬 사장 아키라 지바의 책상을 보도록 하자. 넓은 유리판 위에는 컴퓨터, 책상용 소품, 그리고 진행 중인 프로젝트 관련 서류가 몇 장 놓여 있다. 가까이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커다란 포켓몬 인형을 제외한다면 이것이 전부이다. 지바 사장의 책상은 사용하고 있다는 흔적 정도만 남아 있다. 다른 경영자들의 책상도 텅 비어 있기는 매한가지이다.”

자력으로 CEO 자리에 오른 사람들의 하루 일과를 관찰하고 인터뷰한 스테파니 윈스턴은 성공한 CEO들의 첫 번째 공통점으로 유난히 깔끔한 책상을 꼽았다. 책에는 석유 재벌 록펠러가 책상 위에 깔개, 펜, 잉크, 연필만 놓아두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양진영 LG디스플레이 코칭CoE(Center of Expertise)팀장(심리학 박사)은 “책상 정리를 잘하는 행동은 명확성(명확한 지시와 업무처리)과 체계적 사고, 일처리의 우선순위화, 효율적 업무 처리 등의 속성과 연결된다”고 말했다. 이런 속성은 결국 일을 잘하게 하고 성공의 가능성을 높인다.

화이자 등 세계 굴지의 대기업들은 직원들에게 강제로 책상 정리를 시킨다. 소위 빈 책상 정책(empty desk policy)이다. 직원들은 퇴근 이전에 책상 위를 말끔히 비워야 한다. 이는 보안문서의 유출을 막는 동시에 근무 환경을 깨끗이 유지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 훌륭한 뇌 훈련법

책상 정리는 두뇌의 효율적 이용과도 연관이 있다. 인간의 두뇌는 컴퓨터의 중앙처리장치(CPU)와 같다. 컴퓨터에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동시에 띄워놓으면 작동 속도가 떨어진다. 뇌도 마찬가지다.

경영연구가 공병호 씨는 “막연히 어떤 일을 해야지라고 생각하는 것만으로 뇌는 그 일을 해결하려는 모드로 들어간다”고 말한다. 해야 할 일이 정리되지 않거나, 우선순위가 정해지지 않으면 우리의 뇌에는 여러 가지 ‘프로그램’이 작동하게 된다. 효율과 속도가 떨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공 씨는 이런 현상을 막기 위해서 “머릿속에 있는 것을 일단 밖으로 끄집어내야 한다”고 설명했다. 메모를 하거나, 다이어리를 쓰거나, 책상 위를 정리해 일거리를 정돈하는 것이 이에 해당한다. 특히 그는 “책상 정리는 뇌를 ‘워밍업’시키는 것과 똑같은 효과를 지녀 물리적으로 머릿속을 정리하는 데 매우 도움이 된다. 이를 통해 일에 대한 집중력도 높아지고 업무 효율을 높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우리는 물건을 자주 잃어버리거나 찾기 힘든 것을 그저 습관이라고 여기고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사실 이런 현상은 머릿속에 과부하가 걸렸기 때문에 일어난다. 과부하를 그대로 두면 뇌 능력도 자연히 떨어진다. 일본의 뇌신경외과 전문의 쓰키야마 다카시 박사는 자신의 책 ‘두뇌의 힘 100% 끌어올리기’에서 “정리정돈을 하는 것은 고차원적 뇌기능을 유지하는 훈련”이라며 “일하다가 혼란에 빠졌다면 가장 먼저 책상을 정리하라”고 조언한다.

한편 책상 정리의 구체적 방법도 사고의 그것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책상 정리에 가장 큰 시사점을 주는 것은 사고의 ‘파일화’다.

인간의 뇌는 많은 사안을 한 번에 기억하지 못한다. 심리학자들은 뇌의 단기기억은 동시에 최대 7가지 이슈만 처리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100가지 이슈를 동시에 기억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이슈 100개를 5개의 소분류로 나누고, 각각의 소분류를 다시 비슷한 것끼리 묶으면 가능하다. 100개를 A, B, C, D, E로 분류하고, 나아가 A그룹에는 a, b, c, d, e가 있다고 세부적으로 정리한 후 A그룹 안의 a에는 a1, a2, a3, a4 등의 사항이 포함되어 있다는 식으로 들어가면 된다. 이렇게 하면 대략적으로 100개의 이슈를 떠올릴 수 있게 된다. 이를 사고의 파일화라고 한다.

책상을 정리하는 것도 사고의 파일화와 다를 바가 없다. 예를 들어 100개의 이슈를 몇 개의 그룹으로 파일화하면 A안건과 B안건 자료의 보관 장소가 자연스럽게 분리된다. 더 나아가 a에 관한 자료는 봉투에 넣어 A파일 박스에 넣고, 그중에서도 최우선 과제인 a1자료는 봉투 맨 앞에 붙이면 된다. 이런 식으로 정리를 하다 보면 책상도 자연스럽게 깔끔히 정리가 된다. 그리고 무엇이 어디에 있는지도 바로 알 수 있다.  
▼ 일부학자 “정리할 시간 있으면일 더해라” 주장도 ▼

책상정리의 효과에 대해 모든 이들이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미국 컬럼비아 경영대학원 교수 에릭 에이브러햄슨과 저널리스트 데이비드 H 프리드먼이 쓴 책 ‘완전한 혼란, 무질서의 숨겨진 이득’(A Perfect Mess, The Hidden Benefits of Disorder)은 “주변을 정리하고 체계화하는 것은 그만큼 시간을 소모한다”고 주장한다. 정리에 쓸 시간에 회사를 위해 더 높은 성과를 내는 게 낫다는 것. 저자들은 만약 지저분한 책상에 앉아 있는 사람과 깨끗한 책상에 앉아 있는 사람이 똑같은 분량의 일을 같은 시간에 한다면, 전체적으로는 지저분한 책상에 앉은 사람이 더 생산적이라고 말한다. 그들은 주변을 정리하는 데 시간을 낭비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이에 대해선 충분히 반론 제기가 가능하다. 매일 조금씩 책상을 정리한다면 시간 부담은 거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또한 결과적으로는 지저분한 책상 때문에 생기는 여러 혼란과 낭비를 막고, 일의 효율을 높일 수 있다. 하지만 미국의 채용대행 업체 아질론이 2005년 실시한 설문조사 내용은 꽤 솔깃하다. 조사에 따르면, 연봉 7만5000달러 이상을 받는 사람들 중 11%만이 “나는 책상을 깨끗이 정리한다”고 대답했다. 이에 반해 3만5000달러 이하를 받는 사람들 중에서는 66%가 자신의 책상이 깨끗하다고 답했다. 책상 정리를 잘 못하는 사람에 대해서도 3명 중 한 명만이 “지저분함 때문에 그 사람을 나쁘게 평가한다”고 했다.

그렇지만 아질론의 설문조사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무리라는 주장도 있다. 양진영 팀장은 “책상 정리의 개념을 단순한 청결함(clean)과 정돈(organized)으로 분리해 볼 필요가 있다”며 “고액연봉자들은 자기 나름대로 일의 콘텐츠를 체계적으로 정리해 두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결국 선택은 온전히 자기 자신의 몫이다. 책상정리의 힘을 믿는다면, 당장 다음 주 월요일에 출근해 책상을 닦고 하루를 시작해보면 된다. 아무리 바쁘더라도 단 몇 분만 시간을 내서 걸레질을 해 보고 자료를 정리해 보자. 밑져야 본전이다. 한 번의 걸레질로 적어도 위생적이고 청결한 책상에 앉아 하루를 보낼 수 있을 테니까.

박희창 기자 rambla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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