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화 씨 ‘왕의 색 - 大紅’전

  • Array
  • 입력 2011년 2월 8일 03시 00분


코멘트

우리 염료로 그려낸 우리 빨간색

화학염료의 사용으로 사라진 우리의 색을 찾는 작업을 해온 김정화 씨의 ‘코스모스’ 연작. 식물에서 추출한 자연의 색감으로 완성한 그의 회화는 우주의 신비를 엿보게 한다. 사진 제공 짚풀생활사박물관
화학염료의 사용으로 사라진 우리의 색을 찾는 작업을 해온 김정화 씨의 ‘코스모스’ 연작. 식물에서 추출한 자연의 색감으로 완성한 그의 회화는 우주의 신비를 엿보게 한다. 사진 제공 짚풀생활사박물관
“원래 화가가 되고 싶어 염색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어릴 때 주변에서 접한 색감으로 그림을 그리려 하니 먼저 전통염색의 기술적 부분을 익힐 수밖에 없었다. 그 과정에 20년을 훌쩍 보낸 뒤 화학염료로 흉내 낼 수 없는 자연과 닮은 색감의 재현에 성공했고 이를 바탕으로 회화작품을 선보이게 됐다.”

서울 종로구 명륜동 짚풀생활사박물관에서 12∼27일 ‘왕의 색―대홍(大紅)’전을 여는 김정화 씨(55)는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우리의 전통염색에서 쓰인 빨강은 순도 높은 ‘홍’과 순도 낮은 ‘적’으로 나뉜다. 특히 홍화를 이용해 만든 대홍은 임금의 곤룡포에 쓰였던 색으로 전통염색의 꽃으로 불린다. 이번 전시는 대홍 등 식물염색으로 완성한 직물자료 170여 점과 염색을 이용한 그림을 소개한다.

김 씨는 “화학염료가 발명되기 전에 빨강은 권력과 부를 가진 사람의 전유물이었다”며 “그만큼 재료도 비싸고 만드는 공정도 까다롭다”고 설명했다. 사진으론 쉽게 구분되지 않지만 전시장에선 포근하면서도 환한 대홍의 색감을 자연 채광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는 경북 영천시 농업기술센터에서 일하던 1980년대 말부터 전통염색법을 체험한 촌로들을 찾아다니고, 색에 대한 온갖 기록을 뒤져가며 염색을 연구했다. 무수한 시행착오를 거친 끝에 식물염색을 통해 ‘살아 있는 색깔의 참된 기쁨’을 맛보게 된다.

“한 필의 천을 대홍으로 염색하려면 홍화 220근을 들여 25회 염색을 거듭해야 한다. 전시에 나온 직물은 그만큼 힘들게 완성된 색감을 보여준다. 하지만 전통이 박제되면 의미가 없다. 내가 재현한 색이 의복과 유물 복원에 적용되는 것을 넘어서 폭넓게 활용되는 길을 찾고 싶다.”

붓을 사용하지 않고 완성한 회화는 바로 그 꿈을 반영한 작업이다. 동양의 산수, 서양의 추상의 경계를 넘나들며 독특한 울림을 빚어내는 작품들과 더불어 ‘코스모스’ 시리즈는 풍부하고 깊은 색감으로 우주의 신비를 염색으로 표현해 인상적이다.

인조 색상이 넘쳐나는 시대지만 그는 자신의 일이 어머니의 등에 업힌 채 바라본 기명색의 하늘처럼 감성에 따라 달리 보이는 사물과 현상의 색감을 표현하는 것이라는 데 자부심을 갖고 있다. 색을 만드는 공정은 과거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그가 지향하는 이미지가 미래에 맥이 닿아 있는 이유다. 02-743-8787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