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첫 실크로드 특별전, ‘왕오천축국전’ 세계 첫 공개 전시. 동아일보와 국립중앙박물관, MBC가 공동 주최하는 ‘실크로드와 둔황-혜초와 함께하는 서역기행’이 18일부터 내년 4월 3일까지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엔 프랑스국립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는 혜초의 ‘왕오천축국전’(727년 완성)을 비롯해 중국 신장(新疆) 간쑤(甘肅) 닝샤(寧夏) 지역의 박물관 11곳이 소장하고 있는 청동의장행렬, 황금허리띠고리, 각종 회화 공예 고분출토품 등 실크로드 유물 220여 점이 선보인다.
간쑤 성 우웨이 시의 고분에서 나온 청동의장행렬. 기원전 3세기∼서기 3세기. 수레 길이 36cm, 말 높이 40cm. 실크로드는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동서 문명 교류의 젖줄. 이 전시에선 초원길, 오아시스길, 바닷길 등 실크로드의 3대 간선도로 가운데 중앙아시아 일대 여러 오아시스를 경유하는 루트를 중점적으로 소개한다.
전시는 8세기 혜초가 여행했던 길을 따라 파미르 고원 동쪽의 실크로드를 따라가는 형식으로 꾸며진다. 1부 ‘실크로드의 도시들’, 2부 ‘실크로드의 삶과 문화’, 3부 ‘둔황과 왕오천축국전’, 4부 ‘길은 동쪽으로 이어진다’.
1부에서는 타클라마칸 사막 일대의 카슈가르, 쿠차, 투루판, 호탄, 누란과 톈산산맥 북쪽의 우루무치 등의 오아시스를 소개한다. 여기서 가장 눈길을 끄는 유물은 신장위구르자치구 카라샤르에서 출토된 황금허리띠고리(1∼2세기). 머리카락처럼 가는 황금실을 용접해 크고 작은 용 8마리의 역동적인 모습을 섬세하게 표현한 공예품이다. 2부에선 인물조각, 회화, 생활 공예품 등을 통해 실크로드 사람들의 일상과 문화를 소개한다.
신장위구르자치구 카라샤르에서 출토된 황금허리 띠고리. 서기 1∼2세기, 길이 9.8cm 3부는 ‘둔황과 왕오천축국전’은 한국 최초의 세계인인 혜초의 구법기행 흔적과 왕오천축국전을 만나는 자리다. 1908년 왕오천축국전이 발견된 둔황의 석굴과 벽화, 왕오천축국전의 내용을 중심으로 혜초의 여행을 설명한다. 서역이 시작되는 관문으로 고대 번영을 구가했던 둔황지역 막고굴의 유물과 벽화, 석굴복제품 등이 선보인다. 특히 중국이 제작한 둔황 석굴 모형 2점(17호굴, 275호굴)을 그대로 옮겨 전시함으로써 막고굴의 웅장하고 화려한 예술세계를 현장에서처럼 느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17호굴은 1908년 프랑스 동양학자 폴 펠리오가 왕오천축국전을 발견한 곳.
4부에서는 둔황에서 동쪽 시안(西安)에 이르는 간쑤 및 닝샤 지역의 유물을 전시한다. 실크로드를 통해 신라 땅 경주로 넘어온 서역의 유리잔, 서역인을 표현한 돌조각 등도 함께 선보인다. 전시 개막식은 17일 오후 2시. 일반 관람은 18일 시작된다.
이광표 기자 kplee@donga.com
▼ 1300년만의 귀향 ‘왕오천축국전’ 세계 첫 공개 전시 ▼ 침묵깬 혜초 육필…‘감동의 파노라마’
16일 오전 10시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 프랑스국립도서관의 로랑 에리데 동양고문서 총괄책임관이 조심스럽게 나무상자를 열었다. 그 안에서 또 다른 작은 상자가 나왔고 다시 그 안에서 두루마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와아!” 나지막한 탄성이 나왔다. 신라 승려 혜초가 인도와 서역을 답사한 후 기록한 여행기 ‘왕오천축국전’(727년 완성·프랑스국립도서관 소장·사진)이었다. 에리데 책임관은 두루마리의 심 역할을 하는 유리봉을 조심스레 움직이며 조금씩 왕오천축국전을 펼쳐보였다. 1283년 전의 침묵을 깨고 나온 기록 앞에 숨소리마저 멎었다.
“상태가 좋네요. 글씨도 또박또박 쓰고. 잘못 적어서 고친 부분도 간혹 있네요. 모직, 카펫을 본 얘기도 있고….”(최광식 국립중앙박물관장) “중앙아시아 쪽에서 코끼리가 몇 마리 있는지 적은 부분도 있습니다.”(에리데 책임관)
왕오천축국전이 한국에 들어온 것은 14일 오후. 프랑스국립도서관의 에리데 책임관이 나무상자 안에 왕오천축국전을 넣고 스티로폼 등으로 단단히 밀봉해 들고 들어왔다. 나무상자는 한국의 대기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수장고에서 이틀간 순응 과정을 거쳤다.
놀라움과 감동으로 한동안 왕오천축국전을 보던 박물관 관계자들은 상태 확인에 들어갔다. 중앙박물관 보존과학팀 천주현 학예연구사가 손전등으로 세밀하게 들여다보며 얼룩진 부분의 위치 등을 확인했다.
상태 점검을 마친 뒤엔 전체 길이 358cm, 227행 5893자 가운데 어느 부분을 전시할 것인지를 논의했다. ‘실크로드와 둔황’전이 혜초의 여정 중 파미르 고원에서 당나라 장안(지금의 시안)까지 보여주는 만큼 박물관 측은 파미르 고원이 있는 사마르칸트 일대부터 두루마리 끝부분(신장 위구르)까지 펼쳐 보이기로 했다. 원본 옆에는 복사본을 완전히 펼쳐 전시한다.
강은지 기자 kej09@donga.com ▼ 한국에 오기까지 ▼ “혜초 모국 ‘한국’서 빌려달라는데…” 佛, 3개월만에 승낙… 직원들 환호
투루판 아스타나에서 출토된 국제 상인 소그드인의 목조각. 7세기, 높이 56.2cm. “예? 그게 가능할까요?” “프랑스가 빌려줄 리가 있나요.”
올해 4월 초 국립중앙박물관 전시과 사무실. ‘실크로드와 둔황’전 준비팀에서 프랑스국립도서관의 ‘왕오천축국전’을 빌려오자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그러나 대부분의 반응은 ‘과연 가능할까’였다. 1908년 왕오천축국전이 발견돼 프랑스국립도서관으로 옮겨진 이후 한 번도 도서관 밖으로 나와 본 적이 없었다. 게다가 프랑스국립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는 외규장각 약탈도서의 반환 문제로 양국이 서로 불편해하던 시점이어서 왕오천축국전을 빌려온다는 것은 생각조차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이후 국립중앙박물관은 수차례의 회의 끝에 대여를 요청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오영선 학예연구사가 프랑스국립도서관 앞으로 e메일과 서신을 보냈다. ‘올해 12월로 예정된 실크로드 문명전에 귀관이 소장하고 있는 왕오천축국전의 출품을 요청한다’는 내용이었다. 한 달 뒤인 5월에 회신이 왔다. 그러나 “현재 검토 중”이라는 답변이었다.
6월 14일 브루노 라신 프랑스국립도서관장이 국립중앙도서관 행사 참석차 서울에 왔다. 다음 날 그는 국립중앙박물관을 찾아 최광식 관장을 만났다. 최 관장은 이 자리에서 “왕오천축국전의 출품을 간곡히 요청한다”고 부탁했다. 라신 관장은 이렇게 답했다. “결과는 대여위원회를 열어봐야 압니다. 그러나 그 회의에 제가 들어가니 잘될 겁니다.” 긍정적인 답변이었다. 혹시 모른다는 생각에 중앙박물관 전시과는 친분이 있는 프랑스 파리의 기메박물관, 주한 프랑스문화원 관계자에게 도움을 청했다.
6월 24일 프랑스국립도서관에서 e메일이 도착했다. ‘귀관의 요청을 승낙한다’는 내용이었다. 중앙박물관 전시과엔 환호성이 터졌다. 실무작업을 지휘한 민병찬 전시과장의 말.
“우리가 외규장각 약탈도서와 연계해 늘 어렵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성사가 돼 저도 놀랐습니다. 나중에 들어보니 프랑스국립도서관 대여위원회에서 ‘1000년이 넘은 기록물이어서 매우 조심스럽지만 혜초의 나라인 한국이 실크로드전을 위해 빌려달라고 하는데 빌려주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얘기가 나왔다고 하더군요.”
왕오천축국전의 이번 나들이는 대여가 아니라 소장도서 대출이다. 프랑스는 대출을 허가하면서 대출 기간은 3개월이고 60cm 이상 펼치지 말라는 조건을 붙였다. 이에 따라 왕오천축국전은 3월 13일 프랑스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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