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봉준 압송사진 日작가가 압송직전 촬영”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10월 21일 17시 2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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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국립중앙박물관서 동학농민혁명 학술회의

지금까지 촬영 경위가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던 동학농민운동 지도자 '녹두장군' 전봉준의 압송사진은 일본인 사진작가가 일본영사관에서 압송 직전 찍은 것으로 확인됐다.

또 전봉준의 효수(梟首)된 모습으로 알려졌던 사진은 다른 사람의 것으로, 나중에 연출됐다는 주장도 나왔다.

일본 나라여자대학 김문자 교수는 22일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는 동학농민혁명 학술대회를 앞두고 미리 배포한 발표자료에서 "명성황후 사진자료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전봉준의 압송사진이 촬영된 경위와 이 사진이 처음 인쇄된 잡지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김 교수에 따르면 이 사진은 일본인 사진작가 무라카미 텐신(村上天眞)이 1895년 2월 27일 서울의 일본영사관에서 법무아문(法務衙門)으로 이송되기 직전 촬영했다.

전봉준의 유일한 사진으로 교과서를 비롯해 여러 책에 실렸던 이 사진은 무라카미가 우치다(內田) 일본영사의 사전허가를 얻어 촬영한 것이라고 김 교수는 말했다.

무라카미는 도쿄에서 발행되던 '메사마시신문'의 그해 3월 15일자 5면에 관련 기사를 썼지만 당시에는 신문에 사진을 인쇄하는 게 불가능해 사진을 같이 싣지는 못했다는 것이다.

이 사진은 화가의 손을 거쳐 그림으로 그려진 뒤 다시 조각가의 손을 거쳐 목판으로 만들어져 3월 12일자 '오사카매일신문'에 삽화로 실렸다고 김 교수는 설명했다.

사진은 이후 5월 10일 도쿄의 출판사 춘양당이 발매한 '사진화보'에 '동학당 수령 전녹두 및 조선순사'란 제목으로 실려 일반에 처음 공개됐다.

김 교수는 또 "그동안 전봉준, 김개남의 수급으로 알려져 있던 사진도 무라카미가 찍은 것으로 동학농민군 지도자 최재호, 안교선의 것으로 보는 게 타당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무라카미는 1895년 1월 23일 최재호, 안교선이 법무아문에서 참수된 뒤 조의문 밖에 효수됐다는 얘기를 듣고 달려갔지만 이미 3일의 효수기간이 끝난 뒤였다"며 "나무에서 내려져 멍석에 쌓여 있던 것을 풀어 다시 재연해 촬영했다"고 말했다.

이날 회의에서 신영우 충북대 교수는 '균암장 임동호씨 약력'이라는 자료를 토대로 그동안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북접농민군 여정과 동학 2대 교주 최시형의 행적을 공개한다.

신 교수는 "1894년 10월 23일 최시형의 무장봉기령이 내려지자 경기, 강원, 충청출신이 주축이 된 북접농민군은 두 갈래로 나뉘었다"며 "손병희가 이끄는 1개 무리는 공주 우금치 전투에 참여했고 다른 한 무리는 문의 일대에서 활동했다"고 설명한다.

북접농민군은 우금지 전투 후에 원평, 태인 등지에서도 치열한 전투를 벌인 뒤 출발지인 충청도로 회군했고 일부는 문의, 지명, 증약, 양산 등지에서 일본군 보병 제19대대의 중로군과도 전투를 벌였다는 게 신 교수의 설명이다.

신 교수는 "무장봉기령 이후 행적이 불분명했던 최시형은 임실에서 북접농민군과 만난 뒤 이후 전투와 행군에서 일정한 역할을 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인터넷 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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