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길상의 섹시한 와인이 좋다! 11] 헬기로 공수한 와인에 반한 김정일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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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0월 20일 16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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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셸 피카르’, 남북 정상회담에서 평화의 와인 되다!

▲ 김정일 위원장을 사로잡은 미셸 피카르의 향기.
▲ 김정일 위원장을 사로잡은 미셸 피카르의 향기.

2007년 10월에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이 있었다. 그런데 이 자리에서 아주 작은 프랑스 와이너리의 한 와인이 화제가 됐다. ‘미셸 피카르’(Michel Picard)란 와인이다.
▲ 남북정상회담에 쓰인 평화의 와인 ‘미셸 피카르 코트 드 뉘 빌라주’.
▲ 남북정상회담에 쓰인 평화의 와인 ‘미셸 피카르 코트 드 뉘 빌라주’.

와인 애호가로 알려진 김 위원장은 환영 오찬 테이블에 오른 9개의 와인 중 하나를 손가락으로 지목해 남북정상회담을 축하하는 의미로 건배를 했는데 바로 이게 ‘미셸 피카르 코트 드 뉘 빌라주’(Michel Picard Cote de Nuits Villages)였던 것.

김 위원장이 특별한 날, 특별한 의미를 부여할 정도로 애착을 보인 이 와인과의 인연은 199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와인을 좋아하는 김 위원장은 괜찮은 부르고뉴 와인을 찾기 위해 당시 파리 북한 대사관에 하나의 미션을 부여했다. 부르고뉴에 직접 가서 좋은 와인을 찾아오도록 지시한 것.

이 때 ‘간택’된 와인이 바로 미셸 피카르다. 순백이라는 이름을 가진 파리 북한 대사관 직원은 헬기를 타고 메종 미셸 피카르를 찾았고, 와인을 시음한 뒤 15종의 와인을 각 1박스(12병)씩 구입해 다시 헬기를 타고 사라졌다.

이 와인은 모두 김 위원장에게 전달됐고, 하나 씩 차례로 시음한 김 위원장은 그 맛에 빠져 들었다. 이후 북한에서는 1~2년 마다 미셸 피카르의 하위 등급 와인부터 최고급 와인까지 지속적으로 구매하고 있다.

메종 미셸 피카르는 1951년 루이스 필릭 피카르가 2헥타르의 포도밭을 사들이면서 시작된 역사가 60년도 채 안 된 신생 와이너리다. 역사가 깊지 않은 와이너리에 대한 평가가 인색한 프랑스 언론으로부터는 잘 소개가 되지도 못했다. 그런데 프랑스와는 크게 상관없는 한국과 북한의 2007년 남북정상회담이 이 와이너리의 운명을 바꿔 버렸다.

▲ 14세기 성 지하에 자리잡은 와인 저장고.
▲ 14세기 성 지하에 자리잡은 와인 저장고.

김정일 위원장이 건배주로 선택한 작은 ‘사건’은 도화선이 돼 언론을 타기 시작했고, 갑자기 크게 유명해져 버렸다. 사람 일도 알 수 없지만, 와인의 운명도 참 알 수 없는 일인 것 같다.

▲ 메종 미셸 피카르 내부.
▲ 메종 미셸 피카르 내부.
▲ 메종 미셸 피카르 야경.
▲ 메종 미셸 피카르 야경.

메종 미셸 피카르의 와인이 인기를 얻으면서 함께 각광받기 시작한 게 하나 더 있다. 바로 성을 개조해 만든 다섯 개의 스위트룸이다. 보기만 해도 마음을 사로잡는 스위트룸은 세계 유명 인테리어 잡지를 도배하기 시작했다.

▲ 하룻밤 꼭 묵고 싶은 스위트룸.
▲ 하룻밤 꼭 묵고 싶은 스위트룸.

뿐만 아니라 프랑스 문화유산 방문프로그램의 각 지방 와인 명가 체험에도 선정됐다.
▲ 현 소유주 프랑신 피카르.
▲ 현 소유주 프랑신 피카르.
미셸 피카르 와인이 궁금해 이곳을 찾은 사람들에게 스위트룸에 머물며 와인을 마시는 일은 하나의 통과의례처럼 되어 버렸다. 그 결과 다섯 개의 방은 항상 예약으로 꽉 차 있단다.

14세기에 만들어진 성의 지하에 자리 잡은 와인 저장고도 역사 속으로 들어가는 매력을 안겨 준다. 단지 그 안을 걷고 있는 것만으로도 타임머신을 타고 중세 시대로 돌아간 느낌이다. 마치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을 읽고 있는 것 같은.

미셸 피카르는 개인 구매자들이 많다. 20% 정도가 개인 구매자들이다. 소위 잘 나가는 부르고뉴 와이너리의 개인 구매율이 평균 10%인 점을 감안하면 열성적인 마니아들이 이곳을 더 많이 찾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부르고뉴 와인이면서 엄청난 고가가 아니란 점도 매력적이다. 북한에서 좋은 부르고뉴 와인을 찾으려고 했을 때 가격도 분명히 중요한 고려 요소였을 텐데, 상대적으로 비싸지 않은 가격에 좋은 퀄리티를 내는 점은 분명 매혹적이다.
글&사진·이길상 와인전문기자(한국국제소믈리에협회 정회원 juna109@naver.com)
사진제공·금양인터내셔날

‘섹시한 와인이 좋다’를 연재하는 이길상 기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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