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 이야기]<986>孟子對曰地方百里而可以王이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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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9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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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혜왕은 자신의 나라가 강대국이건만 자신의 대에 이르러 이웃나라의 침략을 받는 데 대해 수치심을 느끼고 어떻게 하면 설욕할 수 있겠느냐고 맹자에게 물었다. 맹자는 부국강병의 방법을 말하지 않고 위와 같이 대답했다. 얼른 보기에는 迂遠(우원·현실과 거리가 멂)하다고 할 수 있다.

地方百里는 땅이 사방 백 리라는 말로 작은 나라라는 뜻이다. 地方이라고 복합어로 읽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而는 앞말과 뒷말을 의미상 거꾸로 잇는다. 可以는 ‘…할 수 있다’는 뜻을 나타낸다. 王은 동사로 ‘왕 노릇 한다’는 말이다.

사마천은 ‘史記’의 列傳(열전)에 ‘孟子傳(맹자전)’을 두어 맹자의 일생을 서술했다. 열전에 한 사람의 일생 기록을 배정하는 것을 ‘立傳(입전)’이라 한다. 사마천은 맹자의 이름이 孟軻(맹가)이고 그가 騶(추) 땅 사람이라 밝힌 후 그의 학문 연원과 활동에 대해 다음과 같이 개괄했다.

맹자는 공자의 손자인 子思(자사)에게 배운 문인에게서 수업을 하고, 도가 통하자 齊(제)나라로 가서 宣王(선왕)을 섬겼으나 선왕이 등용하지 않자 魏(위)나라 大梁(대량)으로 갔다. 양혜왕도 맹자가 말한 것을 그대로 실행하지 못했으니, 우원하여 일의 실제와 동떨어져 있다고 여긴 것이다.

당시에 秦(진)나라는 商앙(상앙)을 등용하고 楚(초)나라와 魏나라는 吳起(오기)를 등용하고 齊나라는 孫子(손자·병법가 손빈)와 田忌(전기)를 등용해서, 온 천하가 合縱(합종)이냐 連橫(연횡)이냐 하는 외교 전략에 몰두하고 공격과 정벌을 능사로 여겼는데 맹자는 도리어 唐虞(당우·요임금과 순임금)와 三代(삼대·하 은 주의 이상 시대)의 德(덕)을 말했다. 이 때문에 가는 곳마다 뜻이 합하지 못했다.

맹자의 정치이념은 당시 제후에게 우원하다고 간주되었다. 그 이념이 과연 우원하기만 할까?

심경호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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