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화성 전문기자의&joy]“인수봉 첫 등반자는 英외교관과 한국계 일본인”

동아일보 입력 2010-09-10 03:00수정 2010-09-10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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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경석 씨 ‘한국등산사’에서 밝혀
한국 산악계의 산 증인 손경석 선생과 그가 최근 펴낸 한국 등산사.
북한산 인수봉 암벽 꼭대기엔 누가 맨 먼저 올랐을까. 밑쪽 둘레 400∼500m, 높이 약 200m의 화강암 덩어리. 여의도 63빌딩(264m)보다 조금 낮다. 석기시대 원시인들이야 오를 마음도 없었고, 오를 방법도 없었으리라. 하지만 백제나 통일신라시대 사람들이라면 가능하지 않았을까. 적어도 오르려고 맘만 먹었다면 크게 어려울 것도 없었을 것이다. 돌을 떡 주무르듯이 다뤘던 사람들 아닌가. 하기야 석이버섯을 따는 사람들의 바위 타기도 전문가 저리가라다. 조선시대 한복차림으로 밧줄을 타고 암벽을 오르는 그림도 있다.

현재 인수봉 바윗길은 60여 개 있다. 그러나 그 루트는 1900년대 이후 전문 바위꾼들이 낸 길이다. 대부분 처음 길을 튼 사람의 이름이 붙어 있다. 그렇다면 언제 누가 맨 먼저 인수봉에 올랐을까. 정답은 한국계 일본인 임무(林茂)와 당시 일본과 조선에서 근무했던 영국 외교관 아처이다. 이들은 1925년 10월 자일파트너로 인수봉 암벽을 올랐다. 그리고 그 증표로 명함과 기록내용을 빈 병 속에 넣어 인수봉 정상 바위 안에 넣어뒀다.

그 이후로 1930년대부터 인수봉은 많은 루트가 개발됐다. 손기정 선생도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제패 후 당시 양정산악회원들과 함께 인수봉 암벽을 오르내리며 가슴속 울분을 삭였다. 손 선생은 이런 연유로 인수봉 부근 ‘白雲山莊(백운산장)’의 현판 글씨를 썼다.

우리가 이렇게 한국 등산 역사를 알 수 있는 것은 순전히 손경석 선생(84) 같은 산악인 덕분이다. 그는 한국등산사의 산증인이다. 그가 가지고 있는 산악서적만 2만여 권이 넘는다. 60여 년 전부터 쓰던 낡은 등산장비까지 차곡차곡 보관하고 있다. 20kg이 넘는 목화솜 침낭이 대표적이다, 산에 관한 책만 35권이나 썼으며, 관련 논문도 수천 편에 이른다. 그는 한평생 산에서 살았다. 자기 전에 산에 관한 책을 읽고, 깨어서는 산에 올랐다. 틈만 나면 산에 관한 글을 쓰고, 산에 관한 기록이라면 닥치는 대로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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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마침내 ‘한국등산사’(도서출판 이마운틴)를 펴냈다. 1990년대 내려고 했던 것이 거의 20년 가까이 늦어졌다. 정리해둔 카드자료만 수십만 장이 넘는다. ‘한쪽 귀는 가고 겨우 듣고 볼 수 있는’ 나이. 그 누가 뭐라 한들 그는 오직 산의 일부분으로서 살았다. 산은 그의 ‘영혼의 나침반’이었다.

그는 알피니즘을 추구한다. 상업등반을 꺼린다. 결코 히말라야 등반이 목표가 돼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히말라야에 좀 다녀왔다고 어느 날 갑자기 산악행사에서 원로들과 어깨를 나란히 해서는 안 된다. 늙은 선배들에게 1940, 50년대 북한산은 곧 알피니즘의 세계였다. 14좌 등정은 훌륭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하나의 과정일 뿐이다. 결국 한국 등산의 역사를 알아야 한다. 뿌리를 알아야 자신을 알 수 있다. 그의 호는 ‘우산(又山)’ 즉 ‘또 산’이다. 어쩔 수 없는 산사람이다.

김화성 전문기자 mar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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