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범의 설치작품 ‘자신이 도구에 불과하다고 배우는 사물들’. 의자에 놓인 일상 사물들이 자신들이 인간을 위해 제작된 도구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배우고 있다. 사진 제공 아트선재센터
치타가 전속력으로 달려간다. 영양도 목숨을 걸고 내달린다. ‘동물의 왕국’에서 흔히 보는 장면 같은데 어딘지 이상하다. 이어지는 화면을 보면 영양이 치타의 뒤를 쫓고 있다. 먹이사슬의 관계를 뒤집은 영상은 우리 안에 뿌리내린 고정 관념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8월 1일까지 서울 종로구 소격동 아트선재센터에서 열리는 김범 씨(47)의 개인전에 선보인 ‘볼거리’란 영상작품이다. 이번 전시는 석남미술상(1995년) 에르메스코리아 미술상(2001년)을 수상한 김 씨가 회화 드로잉 비디오 설치 책 등 다양한 매체를 활용한 15점의 작품을 선보이는 자리다.
그의 작업은 새로운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도록 일깨우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예컨대 ‘교육된 사물들’이란 연작은 교육이란 경험이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을 사물에 빗대 표현했다. 연작 중 ‘자신이 도구에 불과하다고 배우는 사물들’의 경우 칠판과 TV모니터를 마주한 의자에 가위 시계 컵 칼 등 물건이 놓여 있다. 모니터에선 이 물건들이 인간을 위해 만들어진 도구라는 것을 가르치는 강의가 계속된다. 또 ‘자신이 새라고 배운 돌’ ‘바다가 없다고 배운 배’는 돌에게 한 마리 새라고 교육하고, 배에게 바다가 없다고 가르치는 과정을 보여준다. 어처구니없는 내용에 웃음이 터지는데 보고 돌아서는 순간 왠지 섬뜩하다. 학교든 사회든 외부에서 주입한 대로 생각과 행동이 획일화된 틀에 갇혀버린 우리네 삶이 연상되기 때문이다.
헤어드라이어와 주전자 등 사물이 생명체처럼 부패되어 가는 모습을 고속 이미지로 보여주는 ‘생명을 잃은 사물들’ 역시 익숙한 인식을 흔들어 놓는다. 달리는 말 위에 말이 올라탄 영상작품 ‘말 타는 말’, 고통스러운 형상의 인간이 매달린 열쇠고리 등은 존재의 평등에 대한 작가의 의구심을 드러낸다. 글 솜씨가 빼어난 작가가 ‘눈치’라는 이름의 가상의 개 이야기를 창작한 아티스트 북 ‘눈치’도 전시 중이다.
작업은 개념적이지만 설치와 비디오에 등장하는 오브제를 일일이 만드는 노동집약적 제작과정이 바탕에 깔려 있다. ‘당신이 보는 것이 당신이 보는 것이 아닐 수 있다’는 이미지의 진실을 여러 각도에서 들춰내 사유의 계기를 제공하는 전시다. 관람료 1500∼3000원. 02-733-8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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