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온몸 던져 표현한 작품, 온몸으로 느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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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5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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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나 아브라모빅의 영상작품 ’누드와 해골’. 작가의 몸과 해골을 대면시켜 삶과 죽음을 동시에 사유하게 만든 작업이다. 사진 제공 코리아나미술관
마리나 아브라모빅의 영상작품 ’누드와 해골’. 작가의 몸과 해골을 대면시켜 삶과 죽음을 동시에 사유하게 만든 작업이다. 사진 제공 코리아나미술관
힘겹게 버스 계단을 내려오는 한국의 할머니, 초미니 스커트에 빨강 머리를 한 펑크족 여성, 검은 피부의 힙합 댄서.

전시장에 걸린 사진들은 뉴욕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한인 작가 니키 리의 ‘프로젝트’ 사진 시리즈다. 한데 사진에 등장한 세 사람은 실제 동일한 인물이다. 작가가 몇 달간 다양한 커뮤니티에 직접 뛰어들어 살면서 옷도 행동양식도 그들과 닮기 위해 노력한 뒤에 찍은 결과물이다. 자신의 문화적 정체성을 재구성한 이 사진들은 ‘내가 아닌 타인이 되기에 성공한 증거물’로 평가된다.

6월 30일까지 서울 강남구 신사동 코리아나 미술관(02-547-9177)에서 열리는 ‘예술가의 신체’전은 이처럼 작가의 몸을 직접적 매체로 사용해 만든 각양각색의 작품들을 선보인다. 국내외 작가 16명의 퍼포먼스 영상과 사진, 오브제 작업 등 30여 점을 볼 수 있다.

‘몸으로 사유하기’ ‘타자와 세상과 소통하는 몸’ ‘이질적인 몸’ 등 소주제로 구성된 전시는 몸을 둘러싼 표현 언어가 얼마나 다양한지 확인하게 한다. 특히 마리나 아브라모빅, 피피로티 리스트, 스텔락 등 현대미술사에서 손꼽히는 보디 아티스트의 대표작을 영상으로 만날 수 있는 기회다.

○아티스트, 작품이 되다

세르비아 출신으로 미국에서 활동 중인 아브라모빅은 1970년대 초부터 고통과 육체적 저항에 대한 주제를 다루며 인간의 한계를 탐구해왔으며 1997년 베니스비엔날레에서 황금사자상을 받았다. 이 전시에선 작가의 벗은 몸이 해골을 껴안고 누워 있는 퍼포먼스를 기록한 영상작품 ‘누드와 해골’(2005년)을 선보인다. 삶과 죽음, 일시성과 영원성의 문제를 실감나게 일깨우는 작품. 행위예술의 개척자로 꼽히는 작가는 고통과 위험의 극한을 파고들어 감각적 충격을 던진 작품에서 사유를 담은 작업으로 진화하고 있다.

독일 작가 마르쿠스 한센의 ‘타인의 감정을 느끼다 #2’는 나와 타자 사이의 깊은 연관성을 돌아보게 한다. 작가는 다양한 성, 인종, 나이의 타인을 만나 이야기를 나눈 뒤 그 인물을 촬영한다. 이어 작가는 그 인물과 닮은 표정으로 자기 얼굴을 촬영해 두 사진을 나란히 병렬한다. 외모를 넘어 감정적 소통을 통해 타인의 감정을 느끼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인지 탐색하는 것이다.

미국의 피피로티 리스트의 ‘나는 그리 만만한 여자가 아니에요’는 작가가 등장하는 뮤직 비디오 형식을 차용해 얼굴도 음악도 모호한 여성의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재닌 안토니는 자신의 머리카락을 붓처럼 사용해 청소하듯 전시장 바닥을 휘젓는 영상을 만들었다. 육체노동을 해야 하는 여성의 활동에 대한 개념을 제기한 작품이다.

한국 작가로는 재개발되기 직전의 땅에 찾아가 자기 몸의 흔적을 남긴 뒤 촬영하는 고승욱. 자신의 소변을 끓여 만든 결정체로 사진과 오브제를 선보인 장지아 등의 작업을 볼 수 있다.

○몸으로 세상을 읽다

전시에는 가학적으로 보이는 퍼포먼스를 담은 작품도 있다. 호주 작가 스텔락은 자신의 몸을 갈고리에 매단 파격적 퍼포먼스를, 독일의 줄리 자프레노는 차가운 물과 철사로 자신의 몸을 고통스럽게 만든다. 이에 비해 해변에서의 줄타기를 수평선과 연결한 재닌 안토니의 ‘Touch’와 자신의 몸과 세계의 소통을 다룬 이재이 씨의 ‘지중해인’처럼 편안한 작품도 있다.

이성과 합리성을 뒤집는 몸, 성과 인종 등 사회적 의미가 교차하는 몸, 사유와 명상을 이끄는 몸을 주목한 전시. 몸을 둘러싼 금기를 깨트리고 이성과 정신의 하위구조처럼 억압된 신체를 해방시키려 했던 90년대까지의 과격한 신체미술과 2000년대 이후 오늘날 시점에서 예술가의 몸은 어떤 방식으로 표현되는지 변화를 엿보게 한다.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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