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스님 입적] 어디서 무엇이 되어 우리 다시 만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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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3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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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상사 관음상 조각한 가톨릭 미술가 최종태 교수 추모글

2000년 4월 28일 서울 성북구 성북동 길상사 관세음보살석상 봉안식에 함께한 최종태 교수(왼쪽)와 법정 스님. 동아일보 자료 사진
2000년 4월 28일 서울 성북구 성북동 길상사 관세음보살석상 봉안식에 함께한 최종태 교수(왼쪽)와 법정 스님. 동아일보 자료 사진
스님 지금은 어디쯤 계십니까. 그날 병상에서 강원도 눈 보러 가고 싶다 하셨지요. 또 한계가 있다 말씀하셨지요. 정말로 시간과 공간을 버리셨습니까. 길상사 떠나실 때 미련이 없으시던가요. 송광사 다비를 보는데 실제가 아닌 환상으로 보였습니다. 정말로 가신 건지 영 믿어지지가 않습니다. 오고 가고 하는 것이 어찌 내 마음대로이겠습니까마는 스님, 이것은 무언가 잘못된 것입니다. 여기 사람들 가슴에 눈물이 마르지 않습니다. 법정 스님, 정말 가셨습니까. 우리들의 인연이란 게 이것뿐이던가요. 스님의 향기는 오래오래 남을 것이지만 인정이란 그렇지가 않은 것입니다. 더 좀 계실 일이지 당신만 털고 가시면 될 일입니까. 중생은 홀로서기가 어렵다는 것을 스님은 잘 아십니다. 멀리 계셨어도 나는 늘 스님이 옆집에 계시는 것처럼 가슴에 담고 살았습니다.

1970년대 언젠가 우리나라에 민주화 열기가 높을 때 스님께서 명동에 가셨다면서요. 어떤 신부님이 먹물 들인 옷 입은 이가 웬일이시오 하였을 때 그럼 이 옷을 벗고 오면 되겠습니까 하셨다 들었습니다. 그 뒤로 스님은 김수환 추기경님과 특별히 잘 지내셨습니다. 스님은 김 추기경님과 함께 어두운 우리 세상 밝히는 큰 등불이셨습니다. 어쩌면 내 좋아하는 두 분이 꼭 한 해 시차를 두고 가시는군요. 내 일찍이 이렇게 힘든 경우를 겪어보지 못했습니다. 스님처럼 깔끔하게 사신 이를 어디서 또 찾을 수 있을까요. 법회 때마다 옆에 좀 있고 싶었지만 스님 보고 싶은 사람들 많아서 내가 자리를 비켜드린 것은 스님이 아십니다. 길상사 나물밥 자주 먹고 싶었습니다. 하늘도 무심하시지 스님을 이렇게 서둘러 거두시는 뜻이 무엇인가요. 가시는 마당에 육신에다 아픔을 보탠 까닭은 또 무엇일까요. 아, 스님의 가신 자리는 비어있고 내 마음 어서 추슬러야지 하지만 섭섭한 정 가눌 길이 없습니다.

우리 동갑내기 중에 볼만한 사람 많다 하셨지요. 다 나한테 힘을 실어주기 위해 하신 말씀인 것을 내가 잘 압니다. 길상사에 관음상 만들자고 우리가 처음 만났어요. 머리에 쓰고 있는 관이 무슨 뜻이냐 물었더니 화관(花冠)이라 하셨습니다. 손에 들고 있는 병은 무엇인가 물었을 때 정병(淨甁)이라 하셨습니다. 손바닥이 이쪽에서 보이도록 만드는 까닭은 무엇인가 물었을 때 구고(救苦)라 하셨어요. 나도 짧게 물었지만 스님은 토씨 하나 안 붙이고 외마디 답으로 일러주셨지요. 꽃 관에다 정화수에다 세상고통을 구한다는 그 세 마디 주신 말씀으로 순간에 작품은 다 잡혔습니다. 다음 날로 즉시 나는 흙일을 시작했고 세 시간을 했는데 다 됐다 싶었습니다. 전화를 했더니 뜻밖에도 스님이 받으셨지요. 얼떨결에 다 됐다 했는데 그럼 지금 가보겠다 그러셨습니다. 스님과 내가 그렇게 뜻이 맞아 길상사 절 마당에 관음상이 만들어졌습니다. 이 억겁의 시간 속에서 우리의 두 손이 잠깐 하나로 만나서 한 형상이 태어났습니다. 우리의 만남이 시작이거니 했는데 헤어져야 한다니요. 이것을 어찌 박절한 인연이라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세상에서 성모님 닮은 관음상이라 합니다. 내가 천주교 신자라고 해서 사람들이 만들어낸 애칭입니다. 땅에는 경계가 있지만 하늘에는 경계가 없습니다. 지상의 모든 종교가 울타리를 허물면 한마당이 될 것입니다.

내가 옛날 불경공부를 했는데 어느 날 성서가 좍 읽혔습니다. 그게 무슨 조화냐고 스님께 물었더니 그때 경을 읽는 눈이 열렸다 하셨어요. 실로 40년 만에 묵은 숙제가 단칼에 풀렸어요. 스님도 아시는 일이지만 지금 어떤 이가 길상사를 주제로 오페라를 만들고 있습니다. 그 절터를 스님께 시주한 보살의 노래가 바탕이 되고 아름다운 대합창이 만들어질 것입니다.

성북동 골짜기 평범한 땅이 성스러운 공간으로 탈바꿈되었습니다. 다 스님의 지혜와 공덕입니다. 스님은 글로 선교를 하셨습니다. 일상의 언어로 보통사람들의 가슴에다 진리의 말씀을 심었습니다. 스님의 글은 우선 맑지요. 먼저 마음을 정갈하게 합니다. 그리고 뜻이 뒤따라옵니다. 정화된 물을 마시면 사람이 맑아집니다. 그 물이 어디서 솟아나느냐고 그걸 물어보고 싶었습니다. 언젠가 삼청터널을 지나는데 차 안에서 느닷없이 한 말씀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매달려 마지막에 ‘목이 마르다’ 하셨는데 그것을 ‘사랑의 갈증’이다 하셨어요.

스님은 번뜩이는 지혜의 가르침으로 궁극적인 삶의 목표를 우리에게 일깨워 주셨습니다. 이 물질문명의 퇴폐 앞에다가 무소유(無所有)라는 큰 경고 말씀을 던졌습니다. 스님의 삶 전체가 휘파람이 되어 이 강산 골짜기마다 메아리칩니다. 이제는 쉬실 때. 스님 법정! 어디서 무엇이 되어 우리 다시 만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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