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잘 버려야 얻는다

  • 동아일보

◇낭비와 욕망/수전 스트레서 지음·김승진 옮김/480쪽·2만1000원·이후

《잘 사용하던 물건이 쓰레기로 변하는 경우는 두 가지다. 상하거나 깨져서 못 쓰는 물건이 됐을 때, 그리고 너무 많아서 남아돌 때.

현대 사회에서는 한 가지가 더 추가됐다.

바로 ‘이건 이제 쓰기 싫어졌어’라는 이유로, 지겨워졌거나 취향이 변했기 때문에 물건을 버리는 경우다. 저자는 미국의 소비문화를 연구해온 역사학자다.

이 책에서는 미국 사회를 중심으로 사람들이 무엇을 어떻게 버려왔는가를 탐구함으로써 현대 사회 소비문화의 단면을 드러낸다.》
‘실이나 끈 조각을 모아둘 바구니를 마련하면 쓸모가 있을 것이다. 낡은 단추도 주머니나 함을 마련해 모아두면 필요할 때 그게 어디 있나 헤매지 않고 찾기 쉽다.’

1829년 출판된 ‘알뜰한 미국 가정주부’의 한 구절이다. 이 책은 출간 뒤 3년 새 7판까지 인쇄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이 같은 가사지침서는 남은 음식을 이용해 만드는 ‘완벽한 변신요리’나 ‘헌옷 변신시키기’에 대한 다양한 방법을 제안한다. 당시까지만 해도 절약은 일상이고 낭비는 무지의 결과였다.

하지만 대량생산된 포장 제품의 판매가 늘어나면서 사람들은 점점 더 버리는 일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늘 새로운 것, 깔끔한 것을 추구하는 현대적 삶의 방식이 정착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대표적인 상품이 바로 여성들의 생리대였다.

‘횃불 대신 전등, 손으로 쓴 양피지 대신 인쇄된 책, 여성들에게 고등교육을 금지하던 것 대신 권장하는 것… 습관과 전통은 바뀐다. 삶의 조건은 향상된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제작된 주방 기름 모으기 포스터. 당시 전쟁물자 공급을 위해 폐품 모으기 운동이 벌어졌지만 절약보다는 버리는 습관을 강화하는 결과를 낳았다. 사진 제공 이후
제2차 세계대전 중 제작된 주방 기름 모으기 포스터. 당시 전쟁물자 공급을 위해 폐품 모으기 운동이 벌어졌지만 절약보다는 버리는 습관을 강화하는 결과를 낳았다. 사진 제공 이후
1920년에 미국에서 처음으로 출시된 일회용 생리대 ‘코텍스’가 1922년 선보인 광고의 문구다. 코텍스의 경쟁 상대는 집에서 만든 생리대. 이에 맞서 코텍스는 빠는 대신 버릴 수 있는 현대적 제품이라는 점을 적극 홍보했다.

‘생리대는 현대적인 태도와 습관을 상징했고, 또 현대적인 태도와 습관 덕분에 만들어질 수 있었다… 버리는 것이 나쁜 일이 아닐 뿐 아니라 삶의 질에 기여하는 일이기도 하다는 사고방식이 널리 받아들여지지 않았더라면 생리대는 상업적으로 성공할 수 없었을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미국에서는 전국적인 폐품 모으기 운동이 벌어졌다. 정부는 물자절약을 위해 헌 물건을 고쳐 쓰도록 권장했다. 그러나 이는 ‘필요한 것 외에는 모두 (폐품으로) 버리는’ 습관을 더 강화했다. 게다가 전쟁 기간에 억눌렸던 소비욕구는 전쟁이 끝나자마자 분출했다. 소비주의가 번성하기 시작한 것이다. ‘계획적 구식화’는 이 같은 소비주의를 요약한 단어다. 새로운 기술, 새로운 디자인이 등장하면서 아직도 멀쩡한 물건을 구닥다리로 만들어버리는 현상을 가리킨다.

‘쓰레기를 버리러 나갈 때도 맵시 있게!’ 1994년 어느 잡지의 쓰레기봉투 광고에 등장한 문구다. 이 광고의 할머니는 분홍색에 포푸리 향이 나는 쓰레기봉투를 들고 있다. 쓰레기봉투의 일회성은 편리함과 자유를 상징한다. 예쁜 색깔의 향기로운 쓰레기봉투에 쓰레기를 넣은 뒤에는 더럽고 냄새나는 쓰레기에 대해 더는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은연중에 ‘버리는 일’이 옳은 일임을 암시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1970년대 이후 낭비와 소비주의에 대한 비판이 증가했다. 이제 사람들은 환경보호라는 도덕적 가치를 위해 분리수거와 재활용이라는 새로운 ‘쓰레기 버리는 방식’을 받아들인다.

이처럼 그동안 쓰레기를 대하는 사람들의 생각은 극적으로 변화해왔다. 저자는 여기서 현대 사회의 환경오염과 소비주의를 극복할 단초를 찾는다.

‘우리는 산업화 이전의 생활 방식, 즉 사물을 끝까지 살피는 태도로 되돌아가지는 않겠지만 그 대신 지구와 자연 자원을 끝까지 살피는 태도에 기초한 새로운 도덕, 새로운 상식, 그리고 노동 가치와 효용에 대한 새로운 개념을 가지고 아마도 소비문화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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