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지겨워진 ‘엣지열풍’… 도대체 왜 쓸까?

  • 입력 2009년 9월 3일 14시 07분


여성상사의 간지나는 무기 '엣지'

'엣지있게' '엣지녀' '엣지화장' ….

요즘 최대 유행어는 '엣지있게'이다.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재채기를 할 때도 '에취'가 아니라 '엣지'있게 하라"는 농담이 나올 정도로 이 단어는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당초 마케팅 업계와 패션계에서 알음알음 사용되던 이 단어는 지난해 아이돌그룹 빅뱅이 한 휴대전화 티저 광고에 나와 "넌 엣지 있니?" 하면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최근엔 SBS 인기드라마 '스타일'이 뜨면서 드라마 속 패션지 기자들처럼 일반 사람들도 입에 달고 사는 일상어가 돼버렸다.

●'엣지' 열풍, 왜 이 단어에 열광할까?

엣지(edge)는 '모서리' '(칼 따위의) 날' '날카로움'의 뜻을 가진 영어 단어. 그 어원은 '커팅 엣지'(cutting edge)로 이는 말이나 글이 신랄하고 날카롭거나 기술 등이 최첨단임을 표현할 때 쓰는 말이다. 평범한 일상적인 흐름에 반기를 등 창의성, 너무 까칠해 강렬한 그 무엇을 나타내는 단어다.

국내 패션업계에서는 그동안 '엣지 있다' 하면 '독특하고 개성 있다'는 뜻으로 통해왔다. 케이블 TV의 패션 관련 프로그램이 인기를 얻으면서 패션계의 전문 용어로 통용되던 단어가 일상어로 쓰이게 된 셈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이 단어를 본래 뜻대로 정확하게 사용하는 경우는 드물다. 꼭 집어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무언가 있어 보일 때 '엣지 있다'고 하면 그만이다.

이 때문인지 이 단어가 유행어로 뜬 지 한 달도 되지 않아 벌써 "지겹다"는 얘기도 들린다. 패션업계의 어휘는 대개 '유치찬란'하고 어원이 불분명한 외래어를 남용하는 특징이 있는데 이 단어도 그런 맥락에서 비판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일본어 '간지(感)'에서 나온 '간지 난다'나 '멋지다'는 뜻의 영어 단어 '쉬크(chic)처럼 반짝 유행어로 스쳐 지나갈 것이라는 비판이다.

● 남성 "각잡아라", 여성 "엣지있게"

그런데 '엣지' 열풍에서 정작 놓치지 말아야 할 대목은 애매모호한 단어 뜻보다는 이 단어를 띄운 일등공신인 드라마 '스타일'에서 주인공 김혜수가 차지하고 있는 조직 내 위상이다.

김혜수는 극중에서 패션지 차장에서 편집장으로 승진하며 특유의 도도함과 완벽을 추구하는 업무 스타일로 강한 카리스마를 뿜어낸다. 어리버리한 후배에게 내던지는 말 "엣지있게 행동해"는 냉철하지만 왠지 분위기 있는 그녀 특유의 리더십을 대변한다.

여성의 사회 진출이 활발해지면서 자연스럽게 등장한 여성 상사나 여성 CEO들. 김혜수가 여성적 카리스마와 리더십을 명징하게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다.

여자 상사의 질책은 남자 선배의 '호통'과는 달라야 한다. 그래서 '엣지'라는 모호하고 이국적인 표현이 나왔다. '엣지'는 대단히 여성적인 표현이다. 실제로 '엣지'는 여성이 주도권을 잡고 있는 패션계에서 주로 사용됐다.

그러면 '엣지'는 우리말로 어떻게 옮길 수 있을까. 남성 직장인들은 '엣지'라는 단어를 들으면 가장 먼저 군대에서 "각 잡아라"라는 표현이 떠오른다고 말한다.

군대 내무실에서 의류를 정리할 때 고참들로부터 끊임없이 "각이 없다"는 비판에 시달린 탓이다. 결국 종착점을 알 수 없는 '각'을 위해 후배들은 시달림을 겪기 때문에 엣지의 한국식 표현인 '각'이란 누군가를 공격하기 위한 어휘로 이해될 소지마저 있다.

● 남발되는 엣지, '간지' 나 '쉬크'와 별반차이 없어

그러나 엣지라는 표현은 남성적, 공격적 의미 보다는 여성적, 수비적 의미이기 때문에 널리 사용될 수 있다는 반론도 거세다.

문화평론가 조희제씨는 "실제로 '엣지있게' 라는 말은 이 말을 내뱉는 사람의 약점을 숨기는 매우 애매모호하고 누구도 알 수 없는 방어적인 뜻으로 변신하게 된다"면서 "그냥 자기는 '엣지있게'라고 한마디만 하면 자신의 강점을 알게 모르게 부각시키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모호하지만 왠지 품격 있는 어휘이기 때문에 공격과 동시에 수비를 겸할 수 있는 양수겸장(兩手兼將)의 표현이라는 얘기다.

결국 여성이 사회를 지배할 때는 과거와 다른 단어가 등장할 수밖에 없고 그 첫 번째 사회적 선택이 다름 아닌 '엣지있게' 라는 알듯 모를 듯한 말이라는 해석이다.

정호재 기자demian@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