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탁환 정재승 소설 ‘눈 먼 시계공’]<139>

  • 입력 2009년 7월 19일 14시 43분


제8부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제29장 인생은 격투의 연속이다

139회

놀라운 성공과 치명적인 실패를 설명할 때는 항상 음모론이 대두된다. 사건의 본질로부터 한참 떨어진 지점으로부터 결말을 밝혀내는, 음모 자체가 세상 만물의 본질이라고 역설하는 식이다. 일찍이 로봇MC 남도 자신을 개그맨 남희석이라고 주장하는 기자들 앞에서 이런 조크를 던졌다.

"기적을 믿을 바엔 차라리 음모를 믿는 편이 낫습니다, 여러분!"

최 볼테르가 침실로 들어왔을 때 서사라는 깨어 있었다.

그의 차디찬 손이 등 뒤에서 옆구리로 파고들었다. 그녀는 풋잠에서 깬 듯 돌아누우며 그를 안았다. 자신의 몸에 손을 대도록 허락하는 일, 하나하나 사랑을 배워가는 중이다. 그런데 오늘 사라는 볼테르를 그냥 포근히 안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숨이 막혀라 꼭! 끌어안는다. 예민한 볼테르가 가슴과 가슴 사이에서 속삭인다.

"이상하군."

"뭐가요?"

"꼭 어디 멀리 떠나는 사람에게서 마지막 선물을 받는 기분이 드네."

"로봇은 로봇을 낳지 않죠."

"응?"

사라는 볼테르의 치켜 뜬 눈을 내려다보며 다시 말했다.

"로봇은 로봇을 낳지 않는다고 했어요. 그 생각 한 번도 안 해봤어요? 우리가 사랑을 나누면 아기가 생길지도 모른다는……."

볼테르가 말을 잘랐다.

"해보진 않았지만…… 아기가 생기면 낳아야지. 물론 기계몸의 비중이 너무 높아서 천연자궁으론 어렵겠지만 인공자궁을 사서 쓰면 큰 문젠 없지."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아기를 정말 사랑하고 싶어요."

"혹시 모성애가 생기지 않을까 봐 걱정하는 거야? 인공자궁을 사용하더라도 모성애 촉진 주사를 일주일만 맞으면, 천연자궁으로 직접 아기를 낳은 산모와 똑같은 모성애가 생겨."

"자연스럽게 모성애가 생기는 거랑 약물로 모성애를 만드는 거랑은 다르죠."

볼테르가 사라의 젖가슴을 빠져나오며 툭 뱉었다.

"놀라운 걸."

"뭐가요?"

볼테르는 그녀의 양팔을 잡아 머리 위로 눌렀다. 입술을 보며 얼굴을 가까이 댔다. 숨결이 들릴 만큼, 닿을락 말락 하는 위치에서 멈췄다.

"사라, 당신이 우리 둘의 미래를 그렇게 깊이 고민하는 줄 몰랐거든."

"그건……."

사라는 즉답을 못했다. 볼테르가 그녀의 입술을 도장 찍듯 누른 탓이다. 사라는 그의 혀를, 가슴을, 바람을, 욕망을 천천히 받아들였다. 아기를 간절히 원하는 여인처럼.

12퍼센트 천연몸이 달아오르자 88퍼센트 기계몸도 균형을 맞추기 위해 '흥분 모드'로 진입했다. 성격 급한 볼테르지만 사라의 기계몸이 충분히 '흥분 모드'에 젖을 때까지 기다렸다. 기계몸과 천연몸이 함께 달아오르기도 전에 사랑을 시작하면 심한 경련과 함께 접합 부위에 엄청난 통증이 밀려들 수도 있었다. 볼테르는 기계몸의 비율이 50퍼센트를 넘는 이들의 '특별한 조건'을 암기하고 시험에 합격한 끝에 수술 집도 자격증을 따냈다. 사라에겐 최고의 배우자였다.

"됐어요!"

사라가 충분한 '흥분 모드'를 알렸다. 볼테르는 섣불리 사랑을 시작하지 않았다.

"왜 그래요? 아직도 내가 훌쩍 떠나버릴 것만 같나요?"

사라가 장난치듯 볼테르의 윗입술을 가볍게 물었다. 볼테르가 입을 벌려 그녀의 입술을 사자처럼 물어뜯는 시늉을 했다.

"사랑해."

사라는 볼테르의 가슴에 턱을 괴고 그의 얼굴을 이상한 듯 빤히 쳐다보았다. 그녀는 충분히 그의 사랑을 느끼고 있었다. 단 한 번의 눈짓만으로도, 단 한 번의 미소만으로도. 그러나 그가 그녀를 향해 "사랑해!"라고 속삭인 적은 아직 없었다.

"왜 그래요?"

"사라도 날 사랑하는 줄 알았는데……."

말끝을 흐렸다. 사라의 '흥분 모드'가 차츰 '긴장 모드'로 바뀌고 있었다. 무엇인가를 경계해야 할 때 기계몸이 먼저 알고 반응하는 것이다.

"마지막 정비를 마쳤어. 글라슈트는 완벽한 상태로 결승전을 맞이하게 되었지."

"잘 됐어요, 정말! 이게 다 당신의 열정과 자신감이……."

"내 공이 아냐. 돈의 힘이지. 사라, 당신이 급히 조달한 자금이 없었다면 글라슈트는 4강전에도 나서지 못했을 거야. 이제 그 돈의 출처를 밝히는 게 어때?"

사라가 도둑고양이처럼 볼테르의 배와 가슴을 양손으로 훑으며 올라왔다.

"꼭 알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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