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크엔드 카페]웨딩 매니저, 자기 결혼식은 어디서 했을까?

  • 입력 2009년 6월 12일 03시 03분


《기자의 지인 가운데 9년간 특급호텔 웨딩 매니저로 일해 온 A 씨(32·여)가 있습니다. 직업이 웨딩 매니저이다 보니 나이가 서른이 넘도록 본인 결혼은 제쳐두고 남들 결혼식만 500번 넘게 올려줬죠. 그런데 ‘웨딩의 달인’ A 씨가 천생연분을 만나 올 8월 결혼하게 됐습니다. 특급호텔에 몸담고 있어 국내 유수 기업인의 자제에서부터 유명 연예인의 결혼식까지 치른 A 씨라 그녀의 결혼식은 어떨지 궁금했습니다.》

하지만 결혼식을 두 달여 앞두고 A 씨가 택한 식장은 특급호텔도, 요즘 유행하는 하우스웨딩(고급 레스토랑이나 연회장 등에서 파티와 함께하는 결혼식)도 아닌 수도권의 한 조용한 교회였습니다. 친구들의 기대(?)를 저버린 것은 식장뿐만이 아니었습니다. A 씨는 서울 강남 지역 유명 스튜디오에서 결혼 앨범을 제작하는 대신 평소 친분이 있는 사진작가에게 결혼식 당일 사진 촬영만 부탁했다고 합니다. ‘오버스러운’ 결혼 앨범 대신 결혼식 당일 친구들과 웃음 담긴 기념 앨범을 만들기로 했죠. 친구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결혼이 늦었던 터라 먼저 결혼한 친구의 3∼5세 자녀들이 A 씨의 결혼식 중간에 나와 축하 이벤트도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결혼식 한번 치르는데 ‘억’ 소리 난다지만 불황 탓인지 실속도 챙기면서 가슴 따뜻해지는 결혼식을 준비하는 예비부부들이 늘고 있습니다. 웨딩컨설팅업체인 듀오웨드에서 최근 미혼남녀 267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들은 ‘사라졌으면 하는 결혼문화’로 함들이와 약혼식을 꼽았다고 합니다. 불필요한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요즘 젊은 세대들의 합리적인 결혼관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불황 여파까지 겹치면서 월∼목요일 저녁에 결혼식을 올리는 사례가 많다고 합니다. 한 푼이라도 아끼기 위해서죠. 심지어 일요일 저녁 예식도 부쩍 늘었다고 하네요. 예단비용은 신혼집 장만에 보태 쓰고 장롱 신세를 면치 못하는 예물 대신 평소에도 낄 수 있는 50만 원 안팎의 커플링으로 평생의 언약을 대신한다고 합니다.

이참에 실속 위주의 결혼문화가 굳게 자리 잡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행복은 돈과 혼수에 결코 정비례하지 않거든요. 다시 한 번 새로운 출발을 앞둔 예비부부들에게 축하의 박수를 보냅니다.

정효진 산업부기자 wiseweb@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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