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도 다함께/열린 문화, 국경을 허문다]<9>

  • 입력 2009년 6월 10일 02시 51분


<9> 울산 현대하이스코 외국인 근로자들 ‘희망 요리’

“주말마다 고국의 맛 느끼며 향수 달래요”
필리핀-베트남 출신들 회사식당 주방서 솜씨발휘
“음식 나눠 먹으며 情 쌓아”생산성 향상 큰 도움

6일 울산 북구 염포동 현대하이스코 울산공장의 구내식당 주방. 토요일이어서 한산한 이 주방에 동남아 출신으로 보이는 청년 10여 명이 모였다. 조리대 주변에 자리 잡은 이들은 각종 재료를 꺼내들고 곧바로 요리를 시작했다. 모두 필리핀 출신인 이들은 현대하이스코 협력 회사의 직원들. 서류상 소속은 다르지만 현대하이스코가 제공하는 기숙사에서 함께 생활하며 향수를 달래는 외국인 근로자들이다.

○ 구내식당에서 고향의 맛을

하이스코 협력사인 현대대경의 조너선 툼라오 씨(29)가 숨겨 두었던 실력을 발휘할 차례. 약간 서툰 칼질이지만 닭고기와 야채, 해산물을 정성껏 다듬었다. 이어 각종 향신료에 국물 재료를 더해 국을 한 냄비 끓여냈다. 필리핀 토속 수프인 ‘시니강’이다.

툼라오 씨는 이어 닭고기를 식초와 간장에 담근 뒤 조려낸 고기 요리 ‘아도브’를 만들었다. 이번엔 제법 능숙한 솜씨였다. 옆에서 연방 군침을 흘리는 동료들의 눈길을 의식한 툼라오 씨는 “어린 시절 어머니가 만들어주신 방법 그대로 만들었다”며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아도브를 맛본 마이클 모이세스 씨(30)가 “정말 맛있다”며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웠다. 그리곤 “매주 한 번 동료들과 어울려 고국 음식을 맛볼 수 있다는 게 나에게는 무척 고마운 일”이라고 말했다. 이들에게 시니강은 한국 근로자들이 외국에 나가 맛보는 된장찌개였고 아도브는 삼계탕인 셈이다.

필리핀 청년 툼라오 씨는 2005년 ‘기회를 찾아’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대구 성서공단 염색공장에서 2년 동안 일한 뒤 지난해 현대대경으로 자리를 옮겼다. 툼라오 씨는 이곳에서 파이프를 원형으로 구부리는 데 쓰이는 롤의 교체 작업을 하고 있다.

○ 음식을 통한 한국 사랑 키우기

현재 현대하이스코 협력사에는 38명의 베트남 근로자와 27명의 필리핀 근로자가 근무하고 있다. 현대하이스코는 이들에게 매주 토요일 구내식당 주방을 개방해 식재료를 공급해 주고 조리기구와 시설을 마음껏 사용할 수 있게 했다. 한국에서는 좀처럼 찾기 어려운 ‘고국의 맛’을 직접 만들어 즐기도록 한 배려다. 허주행 현대하이스코 울산공장장은 “낯선 땅에 와 있는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고향의 음식 맛은 큰 용기가 된다”며 “그런 점을 통해 필리핀 베트남 출신 직원과 한국 직원이 서로 융화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현대하이스코는 이에 그치지 않고 매주 토요일 외국인 근로자를 위한 한국어 교실도 열고 있다. 또한 명승지를 찾아가 한국의 전통 문화 체험 기회도 제공한다. 한국에 귀화한 베트남 출신의 심은하 씨가 강의를 맡고 있는 한국어 교육 시간이 특히 인기다. 심 씨는 지난달 근로자들의 경주 나들이에 동행해 한국의 역사와 유적의 의미를 설명하면서 ‘가이드’ 역할을 톡톡히 하기도 했다.

조리대 옆에서 시니강과 아도브를 먹는 이들은 모두 만족한 표정이었다. 이들에겐 향수를 달래는 시간이었지만 한국 산업계에는 또 하나의 희망이었다. 이들의 만족이 한국 산업계의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현대하이스코 관계자는 “이들 근로자의 업무가 단순 반복 작업이 대부분이지만 실제로 본국에서는 고등교육을 받은 우수한 인재도 많다”며 “이들이 한국과 회사에 대한 소속감이 강해질수록 생산 능률이 올라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울산=주성원 기자 s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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