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박선희]장인정신으로 일군 ‘문학세계사 30년’

  • 입력 2009년 5월 14일 02시 57분


1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로 세종문화회관 세종홀. 김규동 김종길 김남조 이어령 김광림 허영자 오세영 서정춘 유안진 신달자 오탁번 시인 등 문단의 원로 시인들과 출판인 300여 명이 모여 ‘문학세계사 30주년 기념식’을 열었다. 시집 ‘항해일지’ ‘바람 부는 날은 지하철을 타고’를 냈으며 한국시인협회 회장을 지낸 김종해 시인이 운영하는 문학세계사는 30년간 1000권이 넘는 책을 낸 문학전문 출판사다. 2002년부터 시 전문 계간지 ‘시인세계’도 내고 있다.

이근배 시인이 시 낭송 자리에서 “한국 시의 30년이자 한국문학출판의 30년”이라고 말한 것처럼 이날 행사는 문학세계사의 기념일을 넘어 한국 문단과 시단의 기념일이었다. 참석한 시인들은 한국 시단을 이끌어 온 문인들과 동고동락하며 성장해 온 문학세계사의 30년 세월을 마치 자기 일처럼 뜻 깊게 여겼다.

지난해 등단 50년 만의 첫 시집 ‘어느 무신론자의 기도’를 이 출판사에서 펴낸 이어령 이화여대 명예석좌교수는 “시는 혼자 쓸 수 있어도 시인은 결코 혼자 될 수 없다. 시 쓰기는 쉬워도 시인 만드는 건 (출판인 등) 많은 이들의 도움이 필요하기 때문이다”라며 “내게 그랬듯이 김 대표가 수많은 시인을 배출한 것을 생각하면 문학인으로서 긍지와 감사함을 느낀다”고 말했다.

한국출판문화진흥재단 이사장인 윤형두 범우사 대표는 “계간지를 하겠다고 할 때 몇 번이나 만류했지만 김 대표가 ‘이것만큼은 돈이 아니라 보람으로 하겠다’고 해서 포기했다”며 “매년 3000개 출판사가 등록했다 사라지는 출판계에서 30년간 문학출판을 하며 시 전문지를 낸다는 건 매우 희소하며 귀감이 되는 일”이라고 말했다.

문학이 위기인 시대라고 하지만 시는 더 어렵다. 초판 2000부가 다 나가지 않는 시집도 많다. 더구나 ‘시인세계’는 판매보다 기증본 형태로 1700부를 발행하는데 매번 1500만 원의 적자를 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판 중 문학을, 그중에서도 시를 가장 중심에 놓겠다는 김 대표의 마음은 변함이 없다. 그는 “시가 독자들의 밥, 몸에 걸칠 옷이 될 수 있도록 책을 통해 전달해주는 역할을 하고 싶다. 시를 쓸 때의 열정과 집념은 출판인으로서의 장인정신과 동일하다”고 말했다.

이윤은커녕 손해 덜기에 바쁜 시집을 전문으로 출판한다는 것은 시에 대한 애정과 사명감이 없이는 엄두도 못 낼 일이다. 시인들이 문학세계사의 30년 생일을 앞 다투어 축하한 것도 김 대표의 ‘시 사랑’에 대한 갈채일 것이다. 이날 유독 문학세계사의 자리가 커보였지만, 앞으로 문학과 독자를 소통시켜주는 출판과 작품이 이어지길 기대한다.

박선희 문화부 tell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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