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길상의 와인레터] 프리 코키지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

  • 입력 2009년 5월 12일 14시 17분


레스토랑이나 와인 바에서 와인을 마시다 보면 이따금 옆 테이블 손님이 와인을 주문하지 않고, 대신 가져온 와인을 마시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레스토랑은 이런 와인에 대해 보통 2~3만원 정도의 돈을 받는다.

이게 바로 흔히 ‘코키지’라 부르는 ‘코키지 피’(Corkage fee)다.

레스토랑 오너 입장에서는 와인 잔과 아이스 버킷 등을 서비스해야 하기 때문에 코키지를 받는 걸 당연한 일로 여기지만, 손님의 와인 반입을 원천적으로 금지하는 곳도 있다. 코키지를 허용하면 와인 매출이 떨어지고, 업장 리스트에 갖춘 와인을 팔아야 마진이 더 남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같은 상식을 뒤집고, 오히려 성공을 거둔 사례가 있다.

서울 동교동에 위치한 이탈리아 레스토랑 ‘비노 파스타’의 현승철 대표, 김우정 소믈리에가 주인공이다.

지난해 7월 기존 레스토랑을 인수한 두 사람은 9월 파격적인 아이디어를 행동으로 옮긴다. 예약 손님을 대상으로 1년 365일 내내 코키지를 받지 않는 ‘프리 코키지’를 선언한 것.

“처음에는 우려와 걱정이 많았어요. 작년 경기가 어려워진 상황에서 프리 코키지는 와인 매출에 막대한 지장을 주는 일이니까요. 리스크가 있었지만 막상 시행하니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매출이 확연하게 늘었어요. 대 만족입니다.”(현승철 대표)

프리 코키지가 매출을 끌어올린 이유는 이렇다.

레스토랑 곳곳에서 와인을 가져와 마시는 사람들이 많다 보니 와인을 안 가져온 사람들은 왠지 와인을 마셔야 할 것 같은 ‘환경의 압력’을 느낀다. 이렇게 분위기가 조성되면 다음은 와인 리스트의 싼 가격이 효용을 발휘한다. 판매하는 와인 가격이 높으면 마시려고 하다가도 비싸서 주저할 텐데 2만2000원(부가세 별도)짜리 하우스 와인을 비롯 2만원대 중반에서 마실 수 있는 와인이 적잖으니 부담스럽지 않게 와인을 주문하기 시작한 것.

김우정 소믈리에는 “밥을 먹고 차를 마시려는 사람들이 밥을 먹고 와인을 마시더라. 젊은 사람들은 와인에 대한 관심이 높지만 가격 때문에 주저하는 경우가 있다. 친구들과 근사한 데서 와인 한 잔 하고 싶은데 여기는 와인을 가져와 마실 수 있고, 또 싸게 마실 수 있으니까 사람들이 많이 찾는 것 같다”고 설명한다.

프리 코키지 정책은 기존 코키지에 대한 관념도 무너뜨렸다.

10만원 이상 고급 와인은 레스토랑에서 마시면 20만원이 넘으니까 사 가지고 가서 돈을 절약하는 게 코키지에 대한 다수 마니아들의 생각이었다면 이 곳은 슈퍼마켓에서 파는 저가의 샹그리아부를 비롯해 싼 와인이 다양하게 등장한다. 심지어 마트 와인을 택배로 배달시켜 마시는 사람들도 있다.

가격표가 아니라 사람들과 함께하는 분위기에서 만족하는, 진짜 와인을 즐기는 문화가 형성됐다.

비노 파스타는 소비자가 원하는 부분을 명확하게 짚었고, 이게 성공으로 이어졌다. 물론 성공의 배경에는 이 곳이 와인 매출을 위주로 하는 와인바가 아니라 레스토랑이라는 점이 크다.

하지만 이 곳의 성공 사례가 시사하는 것은 분명하다. 와인 문화는 와인을 마시는 소비자가 없으면 존재할 수 없다. 성공적인 비즈니스는 소비자의 니즈를 충족시키는데서 출발한다.

이 곳은 이 땅에서 와인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들이 되새겨볼 만한 교훈을 안겨준다.

글 사진=이길상 기자 juna109@donga.com

CLIP 코키지가 무료이거나 저렴한 레스토랑&와인바

▲비노 파스타=예약 손님 대상으로 무료. 서울 동교동 KT 전화국 안쪽 위치. 02-338-8068

▲페퍼민트=이탈리안 레스토랑으로 무료. 서울 압구정동 로데오거리 내 위치. 02-516-5202

▲개화옥=한식당. 코키지 대신 글래스 차지를 받는다. 잔 1개 당 3000원 부과. 압구정동 갤러리아 백화점 근처. 02-549-1459

▲까사 델비노=와인바. 오후 9시 이전까지 코키지 무료. 청담초등학교 인근. 02-542-8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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