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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9년 5월 2일 02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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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폴 사르트르(1905∼1980)는 자신의 이름을 다방면에 걸쳐 놓았다. 철학자이면서 소설, 희곡, 시나리오를 썼고 비평을 했다. 그를 굳이 한 가지 수식어로 표현하자면 ‘20세기 프랑스의 대표적 지성’으로 얘기할 수 있다. 그런 그의 사상과 인생, 저작을 모두 꿰뚫는 평전(評傳)을 쓴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 면에서 현대 프랑스를 대표하는 지식인으로 꼽히는 베르나르 앙리 레비가 쓴 사르트르 평전인 이 책은 의미를 갖는다. 레비 역시 철학자이면서 작가, 영화감독, 저널리스트로 활동 중이다. ‘참여(앙가주망)’를 강조했던 사르트르처럼 그도 전 세계 분쟁 지역을 여행하며 현지의 목소리를 알리는 참여 지식인이다.
저자가 ‘평전’이라는 이름 아래 한 작업은 사르트르의 ‘두 얼굴’을 밝혀내는 작업이었다. 절대 자유를 추구하다가 공산주의와 전체주의에 경도됐고, 이스라엘을 옹호하면서도 뮌헨 올림픽 때 이스라엘 선수들에게 가해진 테러를 지지하는 등 사르트르의 이중적 행보를 보면 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서 엿보이는 레비의 기본적 시각은 ‘사르트르에 대한 존경’이다. “사르트르는 고유의 아우라를 갖고 있었고 신격화한 존재다”고 그는 말한다. 또 사르트르를 샤를 드골과 같은 반열에 올려 “외국에서 프랑스를 생각할 때 떠올리는 이미지는 드골과 사르트르였다”고 전한다. 가는 나라마다 대중의 열광적 호응을 얻었던 사르트르를 놓고 저자는 “사르트르는 국가 원수처럼 대접받았고, 그의 말은 국가 원수의 그것처럼 경청됐다. 말하자면 사르트르는 그 자신이 하나의 움직이는 국가였다”고까지 평가한다.
저자는 이렇게 사르트르를 치켜세운 뒤 문제를 제기한다. 희곡 ‘더러운 손’에서 반공주의적 태도를 밝혔던 그가 나중에 공산주의 모임에서 연설을 하는 등 공산주의의 동반자가 됐다는 점에 의문을 가진 것이다. 이스라엘을 옹호하던 사르트르는 또 뮌헨 올림픽의 테러가 있은 뒤 “팔레스타인인들은 이스라엘과의 전쟁에서 ‘테러’라고 하는 유일한 무기를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면서 그들의 테러를 지지했다.
저자는 “사르트르는 끝없는 자기 투쟁을 했고, 현재의 사르트르가 과거의 사르트르를 부정하게 됐다. 그 결과 사르트르는 한 명이 아니라 두 명이 됐다”는 결론을 내렸다. 저자는 또 사르트르의 최종 목표가 헤겔 철학의 극복이었으나 이에 실패했다고도 평가했다.
사르트르가 언제 어디에서 태어나 무슨 공부를 했으며, 그가 내세웠던 사상은 무엇인지 등을 연대기식으로 다룬 평전을 기대하는 독자에게 이 책은 적절치 않다. 사르트르의 일생을 다룬 책이 아니다. 사르트르 사상의 기본을 이해하겠다는 목적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저자의 글 자체가 난해한 데다 책에서 인용하는 문학가 철학자들이 워낙 많아 그 이름들에 파묻히면서 이 책의 본질을 놓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금동근 기자 gol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