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윤수 관장이 밝힌 ‘감로왕도 이렇게 돌아왔다’

  • 입력 2009년 1월 13일 02시 55분


‘작년 日서 경매’ 소문에

日소장자 삼고초려 설득

현존 최고(最古) 감로왕도(甘露王圖·1580년 제작)가 일본에서 발견돼 고국으로 돌아온 것은 획기적인 의미를 지닌다. 한국에는 조선 전기 감로왕도가 한 점도 없고 한국 불화를 통틀어도 국내에 남은 제작 연대가 확실한 조선 전기 불화는 5점 안팎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감로왕도를 한국에 들여온 북촌미술관 전윤수(41) 관장은 “감로왕도 소장자인 일본의 대표적 컬렉터 사카모토 고로(86) 씨에게 삼고초려한 끝에 이 작품을 한국으로 찾아올 수 있었다”고 말했다.

전 관장은 임진왜란 전투 장면이 세밀하게 묘사된 일본의 ‘울산성 전투도 병풍’ 18폭(2007년)과 1383년 제작된 고려 금동아미타삼존불상(2006년)을 한국에 들여올 만큼 일본 내 한국 문화재의 환수에 관심이 높다.

전 관장은 지난해 11월 일본 교토에서 열린 한 경매에서 수준 높은 조선 전기 불화가 일본인에게 팔렸다는 소문을 들었다. 전 관장은 수소문 끝에 이 불화가 가장 오래된 감로왕도이며 사카모토 씨의 손자가 구입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사실상 사카모토 씨의 소장품이 된 것이다.

죽은 이의 극락왕생을 비는 재(齋)를 지낼 때 사용된 감로왕도는 불교사상, 효를 중시한 유교사상, 민간신앙이 어우러져 당대 풍속을 묘사한 독창적 우리 문화유산이다.

마음이 급해진 전 관장은 다행히 자신이 운영하는 출판사에서 사카모토 씨의 회고록을 번역해 출간한 인연이 있었다. 사카모토 씨는 1987년 일본 에도시대의 ‘봉황공작도 병풍’을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한 적도 있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사카모토 씨의 손자는 구입 사실조차 확인해주지 않았다. 전 관장은 사카모토 씨를 만나 설득하기 시작했다.

“한국에 조선 전기 불화가 거의 남아 있지 않습니다. 한국 국민이 우리 불화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도록 이 감로왕도는 한국으로 가야 합니다.”

사카모토 씨는 완강했다.

“이 작품은 일본에 남은 한국 미술을 연구하는 데도 중요하네. 우리가 먼저 연구하는 게 순서야.”

전 관장은 포기하지 않았다. 이 작품의 존재가 일본 학계에 알려지고 나면 고국에 돌아오기 더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에 12월 한 달 동안 세 번 일본으로 건너가 사카모토 씨를 계속 설득했다. 새해 첫날 저녁 사카모토 씨는 어렵게 감로왕도의 귀환을 허락했다.

구입을 허락하고도 미련이 남았는지 사카모토 씨는 ‘마음이 바뀌면 언제든 내게 되팔라’고 했다.

가장 오래된 감로왕도는 이렇게 고국 땅을 밟게 됐다. 정우택(문화재위원) 동국대 교수는 “보존 상태가 좋고 재를 지내는 의식과 산수(山水)가 뚜렷하게 표현돼 당대 생활상과 화풍을 알 수 있는 자료”라고 평가했다. 정 교수에 따르면 이 작품의 화기(畵記)에는 만력(萬曆) 8년(1580년) 경진(庚辰) 5월에 하단 탱(幀)을 완성한 내용과 감로왕도 제작을 위한 시주자들의 이름이 적혀 있다.

전 관장은 “4월 경남 양산 통도사 성보박물관이 주최하는 명품 불화전에서 이 작품을 일반에 공개하겠다”고 말했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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