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레이터 MS. 박의 라이브 갤러리] 불량배:타자의 이미지전

  • 입력 2008년 12월 8일 11시 07분


지난 달 11월 29일은 ‘꽃’이란 시로 유명한 김춘수(1922∼2004) 시인이 세상을 떠난 지 4주기가 되는 날이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로 시작되는 ‘꽃’은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문학 시험의 단골 메뉴였지만,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나와 너가 어떻게 서로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가에 대한 인생의 심오한 문제가 되었다.

‘나와 너’라는 관계는 문학뿐 아니라, 다른 모든 예술 장르와 나아가 모든 학문이 시작되는 첫 출발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술도 예외는 아니어서 많은 미술작가들의 작업 노트를 볼 때면 이에 대한 고민들로 가득 차 있음을 알 수 있다.

사실 나에 대한 고민은 나의 밖에 있는 너, 즉 ‘타자(他者)’에 대한 고민이라 할 수 있다. 이 타자는 가깝게는 나 아닌 친구나 가족에서부터 멀리는 나와 특별한 관계를 맺지 않는다고 여겨지는 다른 국가나 종교, 제도를 가진 사람들까지 실로 광범위하다. 문제는 우리가 나와 타자를 엄격히 구분하면서 은연중에 후자를 ‘적(敵)’으로 취급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이다.

현재 종로 창성동에 있는 갤러리 ‘쿤스트독’(kunstdoc.com)에서 열리고 있는 ‘불량배: 타자의 이미지’전은 바로 그러한 문제를 집중적으로 조명하는 전시다. 전시 제목부터 심상치 않다.

불량배란 행실이나 성품이 나쁜 사람들의 무리를 가리키는 말인데, 이것이 타자의 이미지라고 하니 궁금증이 생긴다.

이 전시에서 불량배란 사회라는 거대한 울타리 안에서 개인의 가치를 포기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을 뜻하는 비유적 단어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일상에서 나와 ‘다르다’는 것은 종종 나보다 ‘열등하다’거나 나의 ‘적’으로 분류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심지어 적이 없는 경우에는 ‘가상의 적’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다시 말해 나와 너의 ‘차이’는 ‘차별’로 변질되는 경우가 많은데, 국가나 종교, 사회제도, 경제능력에 따라 그 차별은 천차만별이다.

우리가 습관적으로 세계평화를 외치면서도 불량배, 곧 타자의 문제가 계속해서 터져 나오는 이유는 무엇보다 나 역시 다른 누군가의 입장에서 보면 타자라는, 곧 불량배라는 아주 간단한 사실조차도 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결국 나는 너이고, 너는 나이다. 내가 의미 있는 사람이 되고자 한다면, 너와의 관계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래서 김춘수 시인은 말한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라고 말이다.

박 대 정

유쾌, 상쾌, 통쾌 삼박자가 맞아 떨어지는미술 전시를 꿈꾸는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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