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소통]교통사고…수술…시련 딛고 개인전 연 차우희 씨

  • 입력 2008년 10월 7일 03시 00분


작은 상자 속에 조약돌과 낙엽 등 시간의 흔적이 묻어 있는 오브제를 담아 몽상의 세계를 재구성한 신작과 함께 자리한 화가 차우희 씨(왼쪽)와 미술평론가 오광수 씨 부부. 이들은 20여 년을 기러기 가족으로 살면서도 정서와 취향이 일치하는, 한마디로 코드가 맞는 부부라고 자평한다. 고미석  기자
작은 상자 속에 조약돌과 낙엽 등 시간의 흔적이 묻어 있는 오브제를 담아 몽상의 세계를 재구성한 신작과 함께 자리한 화가 차우희 씨(왼쪽)와 미술평론가 오광수 씨 부부. 이들은 20여 년을 기러기 가족으로 살면서도 정서와 취향이 일치하는, 한마디로 코드가 맞는 부부라고 자평한다. 고미석 기자
차우희 씨의 ‘특별히 다정한 이 작은 것들을 위하여’(위)와 ‘상자 속의 몽상’ 시리즈. 사진 제공 진화랑
차우희 씨의 ‘특별히 다정한 이 작은 것들을 위하여’(위)와 ‘상자 속의 몽상’ 시리즈. 사진 제공 진화랑
한생을 살면서 누구에게나 지독한 고난 앞에 무릎 꿇는 시간이 닥쳐오는 것일까. 1985년 독일 정부 장학금을 받은 이래 서울과 베를린을 오가며 작업해온 화가 차우희(63) 씨에겐 지난 3년이 그랬다. 교통사고와 자전거 사고, 추락사고, 심장수술, 개인전을 앞두고 발생한 작업실 화재까지. 쓰나미처럼 밀어닥친 시련 앞에 그는 속수무책이었다.

하지만 힘든 고비마다 곁에서 묵묵히 지켜봐준 남편(오광수·70·전 국립현대미술관장)이 있기에 그는 탈진상태에서 벗어나 분신과도 같은 작품에 몰두할 수 있었다. 미니멀 계열의 회화 ‘오디세이 배’ 시리즈에 집중했던 예전과 달리, 작은 상자에 낙엽과 설탕봉지 등 소소한 물건으로 기억의 목소리를 채우는 작업을 시도했다. 그 신작을 진화랑 36주년전 ‘특별히 다정한 이 작은 것들을 위하여’(14일까지·02-738-7570)에 내놓는다. 자신이 위로받았듯, 버거운 현실의 무게로 지친 이들을 보듬어주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을 담아서.

#따로 또 같이-한길을 걷는 부부

“반응이 어떨지 떨리기도 하고….”

전시 개막에 앞서 만난 남편은 걱정부터 앞선다. “평생 처음 부부 인터뷰에 응했다”며 쑥스러움을 드러내는 두 사람. 부부 이전에 미술의 길을 함께 걷는 동지로 서로 아끼고 존중하는 사이다. “당신은 나한테 하나님이잖아”라고 말하는 아내, ‘남자 망신 다 시킨다’는 말에 흔들리지 않고 20여 년을 기러기 가족으로 살며 세계를 향해 아내가 작업할 수 있게 든든한 우군이 되어준 남편. 차 씨의 부산여고 선배이기도 한 진화랑 유위진 대표가 지나가며 한마디 던졌다. “만날 같이 붙어 있어야 잉꼬부분가. 이상이 같고, 가는 방향이 같으니 두 사람이 진짜 잉꼬부부지.”

“희생이라면 희생일 수 있으나…. 베를린이란 곳이 주변국가와 소통하고 작가로서 국제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다. 작가는 풍부한 감성도 있고, 그걸 밀고 나가는 내적인 힘을 갖춰야 하는데 집사람은 그걸 갖추고 있다고 생각했다.”(오) “예술은 그리움이다. 그리워할 대상도 없는 삶은 끔찍한 일이다. 그리움이 없으면 나태해지고 타성이 생겨 생기 없이 늙어간다. 한국에 머물면서 얻을 수 있는 편안함을 포기한 대신 안주하지 않는 정신을 지킬 수 있었다.”(차)

신작에 대한 평론가 남편의 평을 부탁했다. “배가 거친 바다를 항해하다 작은 포구에 들어와 ‘잠깐 쉼’에 비유할 수 있다. 항해 동안에 일어났던 여러 기억을 상자를 열어 점검하고 되씹어보고 그러면서 다시 항해를 꿈꾸는 것. 잠깐 휴식 속의 꿈에 빗댈 수 있을까.”

남편이 자리를 뜨자 아내는 속삭이듯 말했다. “내가 남편을 훨씬 더 많이 사랑한다. 근데 사랑은 주는 사람이 더 행복한 거다.”

#특별히 다정한 이 작은 것들을 위하여

이전의 개념적 작업에 비해 새 작업은 따스하고 다정해졌다. 끔찍한 고통과 아픔을 씨앗으로 삼아 네모 상자 안에 신비롭고 아름다운 몽상을 꽃 피웠기 때문이다.

“불탄 작업실에 뒹굴던 나무 상자를 발견한 것이 출발이었다. 그 안에 녹슨 철사조각, 낙엽, 편지 등 기억의 흔적을 담아내며 달콤한 이야기를 상상하기 시작했다. 상자를 하나씩 채워가며 스스로 위로받고 행복해졌다. 누구든 마음을 열고 보면 함 속의 이야기가 보일 거다. 바로 자기 자신의 이야기가.”

전시에 나온 80여 점의 크고 작은 상자에는 시적 상상력이 스며 있다. 함이 하나씩 쌓여가며 작가는 살아있음을 감사할 줄 알게 되었다.

그는 “아직 삶이 끝나지 않았으니 힘든 일은 계속될 것”이라며 즐겨 되새기는 말을 들려주었다. ‘나는 인간들이 특히 불행하고 지쳐 있을 때 다정하게 행동한다는 사실을 알았다.’(루이 알튀세) 그의 작은 함들은 스스로에게, 그리고 세상 모든 이에게 무한히 다정하고 싶은 마음을 건네는 방법이었던 거다.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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