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의 무대 선사한 신구 거장…유스오케스트라 협연

  • 입력 2008년 9월 2일 08시 13분


아쉬케나지&임동혁&유럽연합 유스오케스트라 협연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에 들어서니 무대 양편에 죽 늘어선 27개국 유럽연합 국기들이 시선을 끈다.

그렇지. 오늘 연주가 창설 30주년을 맞은 유럽연합 유스오케스트라지.

올림픽 직후여서일까. 도열한 형형색색의 국기들로 흡사 올림픽 경기장에 들어선 듯한 기분이다. 마에스트로 아쉬케나지가 스타카토 주법으로 경쾌하게 걸어 나오더니 지휘대에 오르자마자 뜸도 들이지 않고 지휘봉을 허공에 내리 긋는다.

엥? 느닷없이 연주되는 애국가. 이어 유럽연합의 국가인 베토벤의 심포니 9번 ‘환희의 송가’까지. 이 바람에 관객 일부가 엉거주춤 기립한 채 경청했지만 올림픽 시상식장에 참석한 듯한 덤까지 얹어주었다.

그렇다면 이제 시상대의 가장 높은 곳에 오를 주인공이 걸어 나올 차례. 윙크 한번으로 이 땅의 누님들을 자지러지게 한 ‘국민 동생’ 이용대보다, 구름 같은 오빠부대를 몰고 다니는 ‘마린보이’ 박태환보다 훨씬 더 먼저 클래식계의 누님, 소녀들을 까무러치게 한 ‘건반의 국민 동생’임동혁(24). 세계의 유수 콩쿠르를 휩쓴 금메달리스트가 호리호리한 모습을 보이자 과연 콘서트홀이 뒤집어진다.

아쉬케나지와 협연이 결정되었을 때 임동혁이 주저 없이 선택한 곡이 차이코프스키의 피아노협주곡 1번이었다. 러시아 출신의 아쉬케나지에게 이 곡은 모국어와 같은 것일 테고 러시아에서 10년간 유학하면서 꼭 한국 관객들에게 들려주고 싶어 한 임동혁에게는 더없는 기회였을 테다.

러시아적 정서와 선율미가 넘쳐흐르는 이 곡을 러시아를 대표하는 거장과 협연했지만 임동혁의 차이코프스키는 결코 러시아적인 것에 경도되지 않았다.

임동혁이 연주한 차이코프스키는 가을을 눈앞에 둔 동해안 어느 바다였고, 투명하고 서늘한 그 바다는 온통 파랑 일색이어서 하늘과 수평선의 경계를 종잡을 수 없었다.

전설적인 명연으로 꼽히는 호로비츠-토스카니니의 협연처럼 숨쉴 틈 없이 휘몰아치는 연주도, 아르헤르치-콘드라신처럼 시종 다이내믹하고 강철 같은 타건을 앞세우지 않았어도 임동혁의 소리바다는 때로는 폭풍처럼 질주하며 그르릉 거렸고 그의 트릴은 잔잔한 수면에서 사금파리처럼 부서지며 빛나는 잔광 같았다.

음색은 산호초가 훤히 보이는 바다마냥 청정했고 무아지경에 빠진 그의 표정은 음이란 건반을 쳐서 내는 게 아니라 혼신을 다해 쥐어짜는 것임을 말해주었다.

비록 오케스트라가 음량의 밸런스를 잡지 못해 다소 나대는 듯한, 간혹 박자를 잡지 못해 산만함을 준 아쉬움이 있었으나 이는 덜 여문 오케스트라를 이끄는 노익장의 노련한 조타와 파워풀하면서도 섬세한 음색을 구사한 젊은 거장이 빚는 항해를 보는 것만으로도 넉넉히 상쇄할 수 있었다. 젊은 임동혁이야 다시 볼 기회가 있겠지만 일흔을 넘긴 아쉬케나지를 또 언제 보랴 싶어 걸음 한 무대. 음악은 오직 감동으로 설명될 뿐임을 느꼈다면 이보다 더한 호연이 어디 있으랴.

정용진 | 음악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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