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요양보호사… 아이 돌보미… ‘1인 밀착 서비스’ 뜬다

  • 입력 2008년 8월 20일 02시 59분


간호사-교사 경력 살려 사회봉사 활동 활발

패션 어드바이저는 단골과 동행쇼핑 서비스

노인요양보호사 정점복(47·여) 씨는 매일 한 시간 반씩 최모(85) 씨를 부축하고 집 근처 공원을 산책한다. 최 씨는 뇌중풍(뇌졸중)으로 편마비가 와서 왼쪽 팔다리를 거의 쓰지 못한다.

노인요양보호사를 비롯해 전문 아이 돌보미(베이비시터), 패션 어드바이저 등 개인을 상대로 밀착 서비스를 하는 직업이 늘고 있다.

1인 밀착 서비스를 하는 사람은 서비스를 원하는 고객과 늘 아슬아슬한 심리적 줄타기를 한다. 가족은 아니지만 남처럼 대할 수 없는 서비스 구매자와의 특수한 관계에서 비롯되는 긴장 때문이다.

가족이 아닌 사람을 가족같이 챙겨주면서도 가족이 아니기 때문에 지켜야 할 ‘선’이 있다는 이들이 말하는 ‘관계 맺음’의 비밀은 무엇일까.

○“남을 돕는 게 보람”

1년 3개월째 요양보호사로 일하는 정 씨는 젊은 시절 병원에서 간호조무사로 근무한 경력을 살리기 위해 요양보호사에 도전했다.

요양보호사가 되려면 시도에서 지정한 교육기관의 교육을 받고 자격증을 취득해야 하는데, 정 씨는 요양보호사 1급 자격증이 있어 일정 교육시간을 면제받을 수 있었다. 정 씨는 “노인의 건강 상태에 맞는 물리치료나 간병 방법이 자연히 머리에 떠오르니까 어르신들 간병이 쉬울 것이라고 생각하고 시작했다”고 말했다. 하루 8시간 주 5일 근무하고 80만 원 정도 번다.

9년째 아이 돌보미로 일하고 있는 김영자(66·여) 씨는 초등학교 교사로 일한 경력을 살려 이 일에 도전했다. 아이 돌보미로 일하는 데는 자격증이 필요 없다. 보건복지가족부가 실시하는 ‘아이 돌보미’ 사업에 동참하려면 50시간의 교육을 이수해야 하지만 민간에서 실시하는 아이 돌보미 사업은 사업체가 제공하는 자체 교육을 받으면 된다. 김 씨의 경우 YWCA에 소속돼 아이 돌보미 교육을 받고 있다. 수입은 9시간씩 주 5일 근무하면 90만 원 정도.

○가족 같은 ‘교감’이 중요

밀착 서비스는 생각보다 만만치 않다. 정 씨는 노인을 새로 만날 때마다 어려움을 겪는다. 특히 처음 일을 시작한 뒤 3개월 동안은 무척 힘들었다. 노인들이 마음을 쉽게 열지 않아 다가가기 힘들었고 때로는 신체 접촉도 완강하게 거부했다.

정 씨는 “마음이 통하지 않으면 돌볼 수 없기 때문에 교감이 중요하다”며 “노인이 사는 곳을 방문하면 처음부터 간병에 들어가는 게 아니라 일상적 이야기로 마음부터 푼다”고 말했다.

아기 돌보미 김영자 씨는 그동안 돌본 아이가 세 명에 불과하다. 돌봐주는 사람이 자주 바뀌면 아이가 불안해하기 때문에 김 씨는 한 아이를 맡으면 거의 3년 동안 키운다.

김 씨는 “남의 아이를 잠시 돌보는 게 아니라 내 손자 손녀처럼 키운다고 봐야 한다”고 말한다.

김 씨는 아기 돌보미 계약이 끝난 뒤에도 돌보던 아이가 아파서 입원하거나 부모에게 혼난 뒤 자신을 찾는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아이를 보러 가곤 한다.

○가까워도 ‘선’은 지켜야

신세계백화점 내 의류브랜드 ‘구호’의 패션 어드바이저로 일하는 이은영(39·여) 씨는 재가(在家) 서비스로 대표되는 ‘초밀착’ 서비스는 하지 않는다.

하지만 단골손님의 생활 패턴, 소득 수준, 체형 변화, 선호 스타일을 파악하고 있으며 때론 동행 쇼핑까지 하는 밀착 서비스를 한다. 그래서 9년 된 단골도 있다.

언니 동생이나 다름없는 단골이라도 ‘언어 선택’에는 항상 주의해야 한다. 이 씨는 “친해지면 말실수가 늘어나기 마련”이라며 “단골이라도 호칭은 처음부터 끝까지 ‘고객님’”이라고 말했다.

재가 서비스 종사자들은 고객이 너무 편하게 생각하고 계약된 서비스 이외 다른 일까지 요구할 때 가장 큰 갈등을 겪는다. 김영자 씨는 “아기 어머니들이 아기 돌보미들을 파출부로 볼 때가 가장 힘들다”고 말했다.

노인요양보호사들은 가족처럼 지내다가도 요양 대상자인 할아버지가 진한 농담이나 신체 접촉 등을 해올 때 ‘역시 남은 남’이라는 생각을 한다. 정점복 씨는 “할아버지가 짓궂은 농담을 할 때 당황스럽다”고 말했다.

살뜰하게 남을 돌보는 일은 자신을 돌아보는 기회도 준다. 이들도 실제 가족에게는 “잘 못하고 있다”고 말한다.

정 씨는 “할아버지는 매일 씻겨 드리면서 친아버지는 한 번도 씻겨 드린 적이 없다”며 “지금 이 할아버지에게 들이는 노력의 절반만큼도 친아버지에게는 쏟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마음 아프다”고 말했다.

김현지 기자 nuk@donga.com

▼‘밀착서비스’ 5대 수칙▼

고객 가정사 새지않게

계약 시간은 철저하게

밀착 서비스는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지켜야 할 에티켓도 일반 서비스와는 다르다.

①비밀을 지켜라=노인요양보호사를 파견하는 강남노인복지센터와 전문 아기 돌봄이를 교육하는 YWCA, 패션 어드바이저를 양성하는 제일모직 등이 말하는 ‘밀착 서비스 제공자 수칙 제1호’는 ‘비밀 엄수’다.

서비스를 하면서 알게 된 고객에 관한 개인적인 정보나 가족 간의 문제 등을 다른 사람에게 말하는 것은 절대 금지 사항이다.

밀착 서비스를 하게 되면 어쩔 수 없이 개인 가정사에 대해 알게 된다. 세상은 생각보다 좁고, 말은 빠르게 돌기 때문에 서비스 제공자가 조금 방심한 사이 흘러나간 가정사는 돌고 돌아 고객에게 되돌아오면서 큰 충격을 주기 쉽다.

②공식 호칭을 사용하라=친근감을 나타내려고 ‘오빠’ ‘언니’ 등으로 부르면 서비스 구매자는 대우받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또 고객이 공과 사를 구별하지 못하면 서비스 제공자에게도 불리한 일이 생길 수 있다. 고객이 “언니, 오빠라고 부르라”고 하더라도 공식적인 호칭을 써야 한다.

③고객의 말을 경청하라=밀착 서비스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정서적 교감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고객이 하는 말을 끝까지 듣고 “그렇네요” “그렇게 느끼겠네요” 등의 말을 반복해 고객에게 안정감과 신뢰감이 생기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④세심하게 배려하라=평소에는 별 의미 없이 사용하는 말이라도 시간과 장소에 따라 대상자에게는 깊은 상처를 줄 수 있으므로 상황에 맞는 배려를 하도록 해야 한다. 적절히 격려하는 말이나 따뜻한 말을 사용해야 한다.

⑤계약 시간을 철저히 지켜라=친해졌다고 해서 계약 시간보다 늦게 출근하거나 더 오랫동안 서비스해 주는 것은 서비스 구매자에게 불편함을 초래한다. 밀착 서비스 대상자와의 관계는 가족관계가 아니라 계약 관계에 기초하고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김현지 기자 nu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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