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셀러 따라잡기]출판가 히가시노 ‘쏠림’

  • 입력 2008년 8월 2일 02시 56분


추리소설 편식에 ‘씁쓸’

어린 시절 동네 친구들은 희한하게 ‘꿈’도 닮았다. 탐험가가 인기였다. 세상을 돌아다니는 낭만과 보물을 찾는 모험.

인디아나 존스 역만큼이나 다투던 게 하나 더 있었다. “범인은 바로 당신이야.” 수사반장인지 셜록 홈스인지는 모르지만 서로 탐정이라 우겨댔다. 친구 동생을 시체랍시고 눕혀놓고 떨던 너스레란. 공터에서 잠든 꼬마를 잊어버리고 그냥 왔다가 혼도 엄청 났다.

요즘 서점가를 보면 그 시절이 떠오른다. 신간이 여행서 아니면 추리소설이다. 여름휴가철이래도 지나치다 싶다. “불황이 길다 보니 ‘평균은 하는’ 분야로 몰리는 것”(한성봉 동아시아 대표)이라지만…. ‘악순환’이 되진 않을까 걱정된다.

그런 와중에 특히 눈에 띄는 ‘쏠림 현상’이 있다. 일본 추리소설가 히가시노 게이고(50)다. 올해 들어서만 벌써 7권 째. 한 달에 한 권씩 작가가 작품을 쓸 리도 없고. 그 발화점이 ‘용의자 X의 헌신’이다.

히가시노는 일본에서 일찍 주목받은 작가. 1985년 처녀작 ‘방과후’부터 베스트셀러였다. 하지만 국내에서 각광받은 건 2006년. 그해 나오키상을 받은 ‘용의자 X의 헌신’이 잭폿을 터뜨렸다. 잘 나가야 1만 부인 국내 추리소설 시장에서 8만여 부가 팔렸다. 꾸준히 나가면서 나머지 작품들도 1만∼2만 부를 넘어선다.

그러자 국내 출판계가 난리가 났다. 그동안 책을 낸 출판사만 꼽아보자. 현대문학 랜덤하우스 재인 노블하우스 대교베텔스만 태동출판사…. 세기에도 벅차다. 그렇다고 흥행 작가를 한 군데만 차지하란 법은 없으니. 히가시노 팬 입장에선 흐뭇한 성찬이다.

문제는 이 성찬에 트릭이 숨어 있다는 거다. 히가시노가 어필한 건 “전혀 추리소설답지 않은 독특한 화법”(현대문학 이미정 씨) 덕분이다. 소설에서 사건의 범인은 작품 초반부에 일찌감치 밝혀진다. 그런데 뭔가 찝찝하다. 알고 보니 그 속엔 추악한 사회현상과 복잡다단한 인간 심리가 깔려있다. 그게 뒤통수를 치는 재미를 준다. 이는 히가시노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형식이지만 히가시노 소설이라고 다 그런 것만은 아니다. 어떤 소설은 범인이 끝에 가서야 밝혀지는 전형적인 추리소설 형식을 띠고 있다.

‘범인 사전 노출’이라는 독특한 구성은 1990년대 중반 이후 생긴 작법이다. 일본에서야 순서대로 나왔으니 상관없을 터. 국내에선 2006년 ‘대박’ 이후 출간이 몰리다보니 순서가 뒤죽박죽이다.

‘가가 형사 시리즈’로 최근 나온 ‘악의’도 지난해 먼저 출간된 ‘붉은 손가락’보다 앞선 이야기. ‘용의자 X의 헌신’의 주인공인 구사나와-유나기 콤비를 내세운 ‘탐정 갈릴레오’도 올해 번역 출간됐지만 1998년 작품이다.

‘범인 사전 노출’ 형식이든 아니든 히가시노 소설은 흥미롭다. 예전 작품은 작가의 젊은 시절을 엿보는 재미도 있다. 하지만 여전한 이 찝찝함은 뭘까. 음식도 궁합이 있고 먹는 순서가 있다던데 출판계 다른 밥상은 휑하기만 하다. 이 편식은 어떻게 고쳐야 할까.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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