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짝퉁은 마음을 치유하는 여백”…‘마이 짝퉁…’

  • 입력 2008년 6월 28일 02시 58분


◇마이 짝퉁 라이프/고예나 지음/252쪽·1만 원·민음사

“눈가를 조여 오는 이 느낌이 진짜 싫다. 왜 지금 내 감정 상태가 슬픔인지 모르겠다. R은 내게 말했다. 미니 홈피의 감정을 바꾸면 진짜 기분도 환기된다고. 그 말이 맞는다면 나는 오늘 내 미니 홈피의 감정을 바꿔야겠다…이런 생각을 하는 동안에도 코끝이 뜨거워진다.”

어제와 같은 오늘. 그렇다면 내일도 비슷하겠지. 무미건조한 평범한 삶. 20대 초반의 세월은 노력해도 거창해지질 않고. 물론 그리 아쉬운 건 아니다. 다만 마음이 풍선처럼 쭈그러들 뿐. 진이에겐 사랑도 그랬다.

편의점에서 일하는 진이는 먹먹하다. 차라리 조선시대에 태어났으면, 아무도 연애를 하지 않는 시대라면. 불나방처럼 하룻밤 상대를 찾아 떠도는 B, 온몸을 이미테이션으로 치장한 채 남자에게 목숨 거는 R. 그리고 사랑에 상처 입은 나. 친구도 자신도 점점 모든 게 진짜인지 가짜인지 혼란스럽다. 어쩌면 진실은 ‘짝퉁’에 가까울지도.

‘마이 짝퉁 라이프’는 연애소설이다. 올해 ‘제32회 오늘의 작가상’을 받은 작가는 1984년생으로 이 장편소설을 통해 등단한 깜짝 스타. 하지만 최근 젊은 여성 작가들의 주된 경향인 ‘치크리트’ 스타일과는 결이 다르다. 작가는 “오히려 ‘안티 치크리트’에 가까운 소설”이라며 “뻔하고 소소한 일상에서 담담하게 위안받을 수 있는 글을 쓰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 담담함이 소설 전체를 가로지른다. 단문을 구사하며 무미건조하게 잦아든 흐름은 멈춰선 호수 같다. 하지만 페이지를 넘기며 한발씩 담그는 순간 휘청, 세찬 감정의 물결이 몰려든다. 소설은 그렇게 웅크렸다 휘감겼다 온몸에 똬리를 튼다.

아쉬운 면도 있다. 꽤 근사한 구성요소를 갖췄는데도 ‘훅’ 하고 빨려들질 않는다. 원래 세찬 물살도 대비하면 어지간해서는 버텨내듯이. 물론 그게 작가의 노림수일 수도 있겠다.

작가는 “진실의 유효기간이 짧아지는 시대에 ‘짝퉁’은 오히려 마음을 치유하는 여백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세상도 너무 환하면 상처 입은 이가 숨을 곳이 없지 않나. 작가는 그렇게 비릿한 청춘에 손을 내밀고 있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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