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어루만지는 책 30선]<27>죽음의 수용소에서

  • 입력 2008년 6월 6일 02시 53분


◇죽음의 수용소에서/빅터 프랭클 지음·청아출판사

《“인간으로부터 다른 모든 것을 빼앗아 갈 수 있지만, 인간의 마지막 자유―부여된 환경 속에서 자신의 태도를 결정할 수 있는―자신의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만은 빼앗아 갈 수 없다. (…) 그리고 결정의 기회가 찾아오는 것이다. 그 결정이란 우리 자신의 본질과 내적인 자유를 박탈하는 힘에 굴복하느냐 않느냐의 결정이었다.”》

죽음의 공포 견디게 한 힘 ‘삶의 의미’

이 책의 원제는 ‘Man's search for meaning’이다. 이 책은 정신분석가인 저자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 집단 수용소를 경험한 내용을 담았다. 그는 이 고통스러운 경험 속에서 새로운 정신치료 이론을 창안한다. 이 책은 수용소에서의 생활상을 담은 전반부와 저자가 창안한 ‘로고테라피’라는 개념을 설명하는 후반부로 구성돼 있다.

일반적인 추측과 달리 저자는 현대인이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 비참한 수용소 생활 중에도 삶의 기쁨을 찾는다. 고된 노동에서 잠시 벗어나 다른 생각에 빠질 수 있는 시간이나 인간이 먹기엔 너무나 열악한 멀건 국물 속에서 고기 한 조각을 발견하는 즐거움…. 나아가 저자는 인간이 좀 더 근본적으로 삶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극한적인 고통 속에서 발견한다. 그중 하나가 사랑이었고, 나머지는 삶의 의미였다.

저자에게 사랑은 삶의 고통을 잊게 만들어주는 달콤한 휴식과 같았다. 또한 삶의 의미는 현실의 고통을 견디고 이겨낼 수 있는 힘으로 작용했다. 저자의 로고테라피 개념도 이 두 가지 깨달음 속에서 만들어졌다.

로고테라피는 다음과 같은 가정에서 출발한다. 인간은 신체와 마음과 영혼, 세 가지로 구성돼 있다. 삶의 매 순간은 그것이 아무리 비참할지라도 그 고유한 의미를 지닌다. 삶을 살아가게 하는 가장 중요한 동기는 이런 모든 순간에도 그 의미를 찾으려는 의지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이러한 의미가 변하지 않는 고통을 직면하고 견딜 수 있게 해주는 힘이 된다는 것이 로고테라피의 핵심 개념이다.

책을 읽다보면 그간 진료했던 많은 환자들이 떠오른다. 사람은 모두 빈도 차는 있지만 삶을 구속으로 생각하는 순간이 있다. 수감생활처럼 딱딱한 빵과 묽은 국으로 연명하지도 않고, 하루 종일 강도 높은 노동에 시달리고 있지 않아도 그렇다. 악취를 참아가며 몸 뒤척일 공간도 없는 잠자리만 제공받지도 않는다. 그런데도 왜 현대인들은 구속에 시달리는 것일까.

저자가 보기에 이것은 모두 마음에서 비롯된 문제다. 많은 이들이 과거의 불행이나 답답했던 가정환경, 열악한 경제적 수입 등으로 인한 상대적 박탈감과 불만을 안고 살아간다. 이러한 비극은 정신질환자들에게서 더욱 뚜렷하다. 우울증 환자들은 자신을 둘러싼 삶의 고통이 끝나지 않을 것이라 믿는다. 마치 저자가 수용소에서나 경험한 것들을 일상에서 느끼는 것이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도 한번쯤 자신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스스로 현재의 삶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가. 생사를 기약할 수 없는 나치 수용소에서도 찾을 수 있었던 삶의 의미를 훨씬 풍요로운 환경 속에서 얼마나 간직하고 사는지. 삶의 의미를 너무 쉽게 잊고 사는 현대인에게 이 책은 화두를 던져준다.

류성곤 한림대 강동성심병원 정신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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