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과 터치로 끌어낸 ‘격정’… ‘문미애를 추억하다’ 展

  • 입력 2008년 3월 25일 03시 00분


문미애의 ‘무제’(122x122cm). 젊은 감성이 담긴 1960년대 중반 작품으로 부드러움과 긴장, 분방함과 절제가 조화를 이루고 있다. 사진 제공 환기미술관
문미애의 ‘무제’(122x122cm). 젊은 감성이 담긴 1960년대 중반 작품으로 부드러움과 긴장, 분방함과 절제가 조화를 이루고 있다. 사진 제공 환기미술관
서울 종로구 부암동 환기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문미애를 추억하다’전을 둘러보면 눈과 마음이 환해지는 것 같다. 캔버스에 흘러내리는 물감을 손으로 문지르거나 율동감이 느껴지는 붓 터치, 섬세하면서도 깊이가 담긴 색조, 대담한 화면 구성이 돋보이는 추상표현계열의 회화. 진중하면서도 활달한 기운이 배어나오는 그림들은 강렬한 여운을 남긴다.

많은 사람이 고개를 갸웃거릴 법한 이름, 문미애(1937∼2004). 그는 서울대 회화과를 졸업한 뒤 ‘악뛰엘전’(1962) 등 초기 추상미술 활동에 참여하다가 1964년 미국 뉴욕으로 건너갔다. 그곳에서 남편인 조각가 한용진과 함께 약 10년간 김환기를 중심으로 모인 김봉태 김창렬 등 여러 화가와 교유했다. 평생 작업에서 손을 놓지 않았으나 1984년과 1988년 서울에서 개인전을 끝으로 국내에서 잊혀지다시피 했다.

이번 전시는 그가 일관되게 탐구해온 추상표현작업의 여정을 따라간다. 노랑과 분홍 등 단색 바탕 위에 두꺼운 물감을 나이프로 밀어올린 초창기의 작품에선 젊은 감성의 자유로움과 절제가 공존한다. 1980년대부터는 수직 수평의 화면을 나눈 뒤 물감을 중첩시켜 색채의 오묘한 깊이를 드러내는 작업들을 선보인다. 박미정 환기미술관장은 “조안 미첼과 마크 로스코의 작품을 좋아했던 문미애는 자신의 작품에서도 분출하는 격정과 깊이 가라앉은 심연, 두 세계를 보여준다”며 “작가적 기질과 능력이 넘치는 유학 1세대 작가임에도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던 여성미술가를 재조명하는 전시”라고 말했다.

전시장 한쪽에 뉴욕 화실을 재현한 공간이 마련돼 작가의 체취를 좀 더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더불어 그를 아끼고 사랑했던 이들의 작업을 감상할 수 있는 것도 덤이다. 남편 한용진의 조각과 김환기의 그림을 비롯해 김창렬 김봉태 김종학 윤명로 등 화우들, 민병옥 임충섭 우규승 등 후배들, 신수희 문성자 박충흠 민균홍 신성희 문소영 등 제자들이 추모의 정을 듬뿍 담아 내놓은 작품들이다. 마치 작품끼리 대화를 나누듯 전시를 구성한 것도 흥미롭다. 6월 15일까지. 어른 7000원, 초중고교생 5000원. 02-391-7701∼2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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