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세상 풍경]조선성군 세종-정조 과학사랑 아십니까

  • 입력 2008년 1월 19일 03시 03분


반 고흐 전시가 열리니 반 고흐에 관한 책이 쏟아져 나온다. 정조와 세종을 다룬 TV 드라마가 인기를 끄니 정조와 세종에 관한 책이 쏟아져 나온다. 유행을 좇는다고 탓하는 건 아니다. 책도 엄연한 상품인데 유행을 좇는 게 뭐 그리 흉이 될 것인가.

다만 아쉬움이 있다면 책들이 대부분 제왕의 리더십에 초점을 맞춰 그 내용이 비슷비슷하다는 점이다. 내용이나 형식이 서로 달라야 상품으로서 가치가 올라갈 텐데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이번 주에 나온 세종과 정조 관련 책 가운데엔 역사학자 김준혁 씨가 쓴 ‘이산 정조, 꿈의 도시 화성을 세우다’(여유당)가 눈에 띈다. 정조가 수원 화성을 축조하게 된 배경, 화성의 구조적 특징과 미학 등을 고찰한 책이다. 물론 화성을 다룬 책도 이미 여럿 나와 있다. 그럼에도 이 책을 주목하는 것은 정조를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도록 도와주기 때문이다.

그 새로운 시각은 다름 아닌 과학이다. 화성은 설계 및 축조 과정, 구조 등이 매우 과학적이라고 평가받는다. 그러면서도 아름답다. 그래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 된 것이다. 쏟아져 나오는 세종과 정조 관련 서적들은 대개 애민정신과 문화주의만 언급하고 있다. 하지만 과학을 빼놓고 세종과 정조를 논할 수는 없는 일.

무슨 과학인가 하고 궁금해하는 독자들에게는 지갑을 열어 1만 원짜리 지폐를 꺼내 보라고 권하고 싶다. 2007년 새로 나온 1만 원권 지폐엔 세종의 초상과 혼천시계의 부품인 혼천의를 비롯해 천체 망원경, 천문지도인 천상열차분야지도가 그려져 있다. 옛 1만 원권엔 세종의 초상과 자동 물시계인 자격루의 부품(물 항아리 등)이 디자인되어 있다. 모두 과학문화재들이다.

그 많고 많은 문화재 가운데 왜 자격루이고 왜 혼천시계인가. 자격루는 15세기 세종 때 불세출의 과학자 장영실과 김빈 등이 만든 최첨단 자동 물시계다. 혼천시계는 세종 정조 시대는 아니지만 17세기 천문학자 송이영이 진자의 원리를 이용해 만든 천문시계다. 영국의 세계적인 과학사학자 조지프 니덤이 “세계 유명 박물관에 꼭 전시해야 할 인류의 과학문화재”라고 극찬했을 정도다.

세종과 정조의 시대는 문예부흥의 시대였지만 그건 과학의 뒷받침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세종대의 자격루가 그렇고 정조대의 화성이 그렇다. 사실, 세종과 정조 시대의 문화재를 둘러보면 과학문화재 아닌 것이 없다. 한글부터가 철저한 과학적 탐구의 결정체가 아니던가.

세종과 정조를 이해하려면 그 시대의 과학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서울 경복궁 국립고궁박물관에 가서 최근 복원된 자격루를 보고, 수원에 가서 화성과 어울려야 한다. 그때 손에 들고 갈 수 있는 세종과 과학, 정조와 과학에 관한 책이 있었으면 좋겠다. 리더십 리더십 하는, 너무나 익숙한 책이 아니라 과학의 눈으로 세종과 정조를 들여다볼 수 있는 그런 책.

1만 원짜리 지폐로 세종과 정조 시대 과학에 관한 책을 사는 일, 생각만 해도 참 기분 좋은 일이다.

이광표 기자 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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