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김주영의 그림 읽기]거울은 나의 고해성사입니다

  • 입력 2007년 11월 3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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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에 인류가 이뤄 놓은 경이적인 발명품 중에는 컴퓨터와 휴대전화가 손꼽힙니다. 물론 그 주장에 동의하면서 위대한 발명품 한 가지를 덧붙이고 싶습니다. 바로 거울입니다. 단순한 공정으로 제작되고 너무나 흔해 빠져서 그것이 지닌 쓸모와 가치를 지나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합니다.

거울이 가진 투시력은 거의 무한대라 할 수 있습니다. 누추했던 과거를 성찰하게 하고, 현재의 자신을 신뢰하게 만들며, 미래와 소통하여 장래를 예측할 수 있는 기능을 가진 인류의 발명품은 거울뿐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내 자신 속에 들어와 숨어 있는 타인의 나쁜 흔적을 색출하고, 내 천적이 누구인가를 가르쳐 주며, 감추고 싶은 상처나 구차하고 헐벗은 삶이라 할지라도 내 자신에게 굴절 없이 비추어 줍니다.

내 자신이 골방에 홀로 갇혀 있을 때도 나를 바라볼 수 있는 것은 거울뿐입니다. 체질에 맞지 않는 약을 복용했을 때 나타나는 명현현상처럼 올곧은 삶과 어긋나는 길을 간다면 삼엄하고 뼈저린 언어로 꾸짖어 줍니다. 신의 어깨에 기대지 않더라도 고해성사를 할 수 있는 수단을 제공하는 것은 그래서 거울뿐입니다. 자신의 삶을 끊임없이 성찰할 수 있는 기회를 거울 때문에 가지게 되었음은 크나큰 행운입니다.

윤선도의 증손자인 공재 윤두서의 자화상은 금속 바리때에 떠놓은 물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고 그린 것이라고 합니다. 그 물거울 이후에 생겨난 것이 원형의 금속면을 갈아 만든 거울이라고 합니다. 물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고 그린 윤두서의 자화상을 가만히 바라보노라면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윤두서의 강인하고 냉철한 반골정신이 너무나 뚜렷하게 각인돼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출세의 길이 막혀 버린 한 선비가 가졌던 290년 전의 현재가 생생하게 살아 숨쉬며 우리를 각성시킨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입니다. 거울만이 건네줄 수 있는 특별한 선물이 아니었더라면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저는 어린 시절, 시골 이발소의 낡은 거울을 바라보며 자랐습니다. 한쪽은 찌그러지거나 깨어져 나가고, 다른 한쪽은 수은과 연단이 벗겨져 희미한 형상만 비춰 주는 초라한 거울이었습니다. 거울 속에 비치는 저는 언제나 볼따구니로 두 줄기 눈물을 질펀하게 흘리며 우는 얼굴이었습니다. 고물에 날까지 무딘 그 바리캉은 제 머리털을 깎는 것이 아니라 쥐어뜯었기 때문입니다. 그때 거울에 비쳤던 저의 일그러진 모습이 너무나 서럽게 보여 평생 동안 울지 않으려고 이 악물며 애써 왔습니다.

김주영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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