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듯이 살아야했던 궁녀, 여자들이 살려냈다

  • 입력 2007년 10월 8일 20시 19분


제작자 정승혜, 각본 감독 김미정, PD 원정심, 모두 여자. 배우 박진희 윤세아 서영희 임정은 전혜진… 다 여자. 영화나 드라마에 수없이 나오면서도 한 번도 제대로 조명 받지 못했던 여자들, 뭐든지 못 본 척 못 들은 척 살았던 여자들인 궁녀가 주인공인 미스테리 스릴러 사극. 영화 '궁녀'는 100% 여자 영화, 여자들이 만든 여자 이야기다.

'궁녀'를 만든 여장부 3인방, 제작자 정승혜 감독 김미정 배우 박진희를 8일 만났다.

● ‘즐거운 에너자이저’정승혜…여자들이 많아 조용히 만들었죠

영화사 아침의 정승혜 대표는 밝고 낙천적이다. 그는 '라디오 스타' '즐거운 인생'처럼 보고 있으면 마음이 따뜻해지는 영화를 주로 만들었다. '궁녀'는 '정승혜 표' 영화 같지 않다.

"카피라이터로 영화 일을 시작해 800여 편의 카피를 만들었죠. 사람들은 저한테 '지겨워서 어떻게 했냐'고 물어요. 그러나 영화 제목이 다르고 감독도 배우도 다르니 늘 새롭잖아요?"

이러니, 처음 해보는 새로운 장르로 오랫동안 알고 지낸 후배(김미정 감독)를 끌어줄 수 있었던 이번 영화도 그에겐 신나는 경험이었다. 여자들이 많아 술도 없고 큰 소리도 나지 않았던 합리적 제작 과정도 좋았다.

삶의 모토가 '사람에 대한 믿음'이라는 그의 주변엔 사람이 많다. 박진희는 정 대표가 준 시나리오라고 했더니 '무조건 하겠다'고 나섰고 김 감독은 칭찬을 할라치면 "모두 정 대표 덕분"이라고 했다. 정 대표가 즐겁지 않을 수 없다.

●‘조용한 카리스마’ 김미정…장면이 잔혹하게 나올수록 흐믓했죠

김 감독을 처음 만났을 때, 박진희는 그가 몸집도 왜소하고 조용해서 놀랐다고 했다. 감독이면 왠지 덩치도 크고 술도 잘 먹는 여성일거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김 감독의 무기는 바로 '조용한 카리스마'. 이준익 감독의 조감독이었던 그는 이 감독의 가르침대로 '감독이 현장에서 하는 것은 관리'라고 믿는다. 이 감독 밑에서 '황산벌' '왕의 남자'를 하며 사극에 대한 경험을 쌓은 김 감독은 궁궐이 온갖 욕망과 권력 다툼의 장이며 너무나 무서운 곳임을 알았다. 그는 궁을 배경으로 여자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기록되지는 않았지만 내밀히 역사의 방향을 바꾸어나간 여자들의 힘에 대한 이야기를.

조용하고 차분한 그의 첫 영화 '궁녀'에는 잔인한 장면이 많다.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촬영하고 모니터를 보면서 장면이 잔인할수록 너무 흐뭇해서 웃고 있었죠. 배우들도 손톱에 바늘 꽂고 웃으면서 촬영했어요."

●‘용감무쌍 건강미인’박진희…예쁜척 안하니 씩씩해지던걸요

목소리도 크고 까르르 잘 웃고. 박진희는 건강한 이미지를 가졌다. 영화 속 천령도 똑똑하고 호기심이 많으면서 올곧은 인물. 남자와의 주먹다짐도 불사할 만큼 힘도 세다. 김 감독은 원래 다소 비관적이었던 캐릭터가 박진희가 맡으면서 '박진희 화' 됐다고 했다.

"저는 예쁘지 않잖아요. (기자는 이 때 야유를 보냈다.) 에구, 꾸미면 누구나 이 정도는 돼요. 이번에 부산영화제 가니까 누구는 얼굴이 이 커피 잔(그 카페의 잔은 좀 컸다)에 들어갈 것 같고 누구는 얼굴이 아예 없고 목이 두 개 이어진 것 같았어요. 그렇게 '예쁜 배우'로 인식되면 이미지를 깨지 않으려고 소심해지지만 저는 평범하니까 씩씩해질 수 있어요." 그래서인지 여자 팬이 더 많다. 연애가 안되는 게 유일한 단점이라고.

우리 나이로 서른, 영화 데뷔 10년. 중요한 때다. "찍을 땐 이게 마지막 작품인 것처럼 했지만 끝나고 나니까 단점만 보여요. 그래서 생각하죠. '이게 마지막은 아니잖아?'"

채지영기자 yourca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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