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84년 바네사 ‘미스 아메리카’ 반납

  • 입력 2007년 7월 23일 03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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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환희

바네사는 1963년 미국 뉴욕에서 태어났다. 아이가 얼마나 예뻤는지, 그녀의 부모는 바네사의 출생을 이웃들에게 알리며 카드에 이렇게 썼다.

“여러분, ‘미스 아메리카’가 세상에 나왔습니다.”

이 말이 후에 딸의 환희와 좌절을 동시에 상징하게 될 줄은 물론 꿈에도 몰랐다.

바네사는 어려서부터 노래에 재능이 많았고 연예인이 되기 위해 대학을 중퇴했다. 그리고 부모의 ‘계시’에 따라 미스 아메리카에 도전하기로 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녀의 검은 피부를 비웃었다. 당시까진 흑인 미스 아메리카도 없었고, 그녀가 이 자리에 오를 것이라 생각한 사람 역시 아무도 없었다.

1983년 바네사는 보란 듯이 왕관을 차지했다. 그녀는 백인 우월주의자의 살해 협박 때문에 경찰의 신변 보호를 받아야 했다.

#2. 고통

“난 레즈비언도, 창녀도 아니에요. 언젠간 사람들도 날 믿게 될 거예요.”

그녀의 연예 인생은 끝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바네사가 어렸을 때 찍은 누드 사진이 포르노 잡지 ‘펜트하우스’를 통해 만천하에 공개됐다. 미스 아메리카에 등극한 지 열 달 뒤의 일이었다.

바네사는 “아는 사진작가의 권유에 호기심으로 찍은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사회는 잔인했다. 1984년 7월 23일, 그녀는 여론의 등쌀에 결국 왕관을 자진 반납해야만 했다.

명예를 잃자 세상도 싸늘하게 등을 돌렸다.

켈로그는 그녀의 사진이 인쇄된 콘플레이크의 생산을 전면중단했다. 그녀는 미스 아메리카도, 인기 있는 광고모델도 아니었다. 그것은 전형적인 미국식 단죄였다.

#3. 영광

그녀는 타고난 끼와 굵은 땀방울로 불운을 극복했다.

1988년 가수로 데뷔한 바네사는 TV 드라마와 뮤지컬을 통해 연기력까지 인정받았다.

빌보드와 브로드웨이에서 종횡무진 활동하는 그녀를 ‘비운의 미스 아메리카’로 기억하는 사람은 없었다. 자신의 약속대로 그녀는 이제 창녀도, 포르노 모델도 아닌 미국에서 가장 주가가 높은 엔터테이너가 됐다.

또 얼마 전에는 최고의 스타들만 모여 있다는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 동판에 자신의 영광스러운 이름을 새겼다.

지금은 40대의 중년인 바네사 윌리엄스. 그녀는 스무 살적 겪은 인생의 커다란 좌절을 회상하며 한때 자신을 짓밟았던 세상을 향해 말했다.

“성공은 가장 달콤한 복수”였노라고.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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