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만리장성,거대한 허구…‘장성,중국사를말하다’

  • 입력 2007년 7월 21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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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중국사를말하다/줄리아로벨지음·김병화옮김/524쪽·1만8000원·웅진지식하우스

“장성(長城)에 가보지 못한 사람은 대장부가 아니다.”

마오쩌둥(毛澤東)은 만리장성이 중국의 위대함을 상징한다며 이렇게 말했다. 미국 닉슨 대통령은 “장성은 위대한 성벽이며 위대한 민족이라야 이런 성벽을 세울 수 있다”고 말했다.

올해 세계 7대 불가사의에 선정되기도 한 만리장성. 기원전 200년 진시황이 최초로 세웠다는 이 ‘기적과도 같은’ 업적에 영국의 소장학자가 작정하고 딴죽을 걸었다.

이 책은 만리장성에 대한 찬사가 근대에 만들어진 신화임을 강조한다. 장성이 ‘위대한 성벽(The Great Wall)’으로 변신한 것은 근대 서구인들 때문이다. 저자는 18세기 영국 사절단이 “인간이 만들어낸 가장 거대한 업적”이라고 말하기 전까진 중국인조차 만리장성에 무관심했다고 꼬집는다. 중국인이 장성을 칭송하기 시작한 것은 불과 70여 년 전. 이 열광은 실패한 혁명과 빈곤으로 얼룩진 중국의 20세기를 은폐하기 위한 중국 정치권의 도구에 불과했다. 저자는 이런 전제를 바탕으로 만리장성 신화의 허구를 낱낱이 벗겨낸다. 만리장성을 중국사의 중심에 놓고, 성벽을 쌓고 무너뜨리며 흥망성쇠를 같이한 수천 년 중국 왕조의 성벽 집착을 추적한다.

중국 왕조는 장성을 기준으로 안과 밖을 구분한 뒤 타자화된 밖을 배격해야 할 야만으로 규정했다. 여기서 탄생한 것이 문화우월주의, 중화주의다. 장성 밖은 “굶어죽거나 강도를 당할 위험과 골칫거리가 많고 구역질나고 몸에 열이 나게 만드는 곳”(한서지리지)일 뿐이었다.

우월주의에 빠진 중국 왕조들은 이민족과의 교류보단 담 쌓기에 몰두했다. 저자는 이 어리석음이 군사력이 쇠퇴하고 조정이 음모로 찌들 때 심해졌다고 말한다. 이민족과 긴장감 속에서 교류하는 일은 세심함을 요구하는 힘겨운 외교정책이다. 파벌 싸움에 눈먼 간신들은 황제의 총애를 얻기 위해 쉬운 방법을 권했다. 결국 장성은 실패한 중국 외교정책의 상징이다.

이렇게 쌓아 올린 장성은 문화적 고립을 의미했다. 중국인 마음속에 뿌리 깊게 남아 있는 이질적인 것에 대한 멸시, 자기중심적 우주관은 장성에 집착한 중국사의 결과라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특히 저자는 장성이 중국 문명지의 중심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데 주목한다. 장성은 이민족으로부터 중국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이민족의 영토를 정복하기 위한 성격이 강했다는 것이다. 장성이 방어용이라 중국인의 평화적 심성을 상징한다는 말은 ‘헛소리’며 오히려 중국 제국주의의 탐욕적인 성격을 밝힐 수 있는 증거라고 지적한다.

저자는 또 중국 둔황(敦煌) 주변에서 발견된 죽간과 목간을 근거로, 한(漢)이 쌓은 성벽은 세금과 부역을 피하기 위해 중국 백성이 흉노 쪽으로 달아나는 일을 막기 위한 수단이기도 했다고 말한다. 저자는 “이런 성벽이 낙원 같은 중국을 탐욕스러운 이웃 야만인들로부터 보호하는 온건한 보호용 방어선이라고 하는 통념은 우습기 짝이 없다”고 말한다.

중국 왕조 중 거의 유일하게 성벽을 경멸했던 당(唐) 태종 때의 중국이 세계 무역의 중심지로 발돋움한 사실은 장성의 허구성을 보여 주는 좋은 예다. 반면 17세기 명(明) 왕조는 겹겹이 담으로 둘러싸인 쯔진청(紫禁城)처럼 국경에 자물쇠를 채웠다. 정교한 성벽과 국경 요새가 많아질수록 이민족에 대한 적대감은 극에 달했고 노동력과 군사력을 소모한 왕조는 몰락했다.

저자에 따르면 만리장성은 수천 년 된 ‘하나의 장벽’이 아니다. 문헌을 다 뒤져도 한대 말이나 명대 초까지 ‘장성’이라는 용어가 거의 쓰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실제로는 군데군데 떨어져 있는 흙성벽돌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중국의 수천 년 역사를 정사와 야사를 넘나들며 꿰뚫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저자가 33세의 케임브리지대 연구원이라는 점에서 더 놀랍다. 그러나 장성의 신화 벗기기가 중국 역사와 문화에 대한 냉소로 이어지는 점은 아쉽다. 문화우월주의와 자기중심주의는 서구에서도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원제 ‘The Great Wall’(2006년).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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