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가는 책의 향기]화려하지만 험난한 요리의 길

  • 입력 2007년 7월 21일 03시 02분


From : 이민 서울 웨스틴조선호텔 식음담당 총괄상무

To: 맛을 즐기는 후배 A

언젠가 내가 자네에게 물었지. “취미가 뭔가?” 이렇게 대답한 게 기억나네.

“미식(美食)입니다. 맛있는 음식 먹으러 다니는 거요.”

요새 젊은이들은 자네 같은 이가 많더군. 인터넷 블로그에 음식 사진을 가득 올린 이도 있고, 전문가도 긴장할 만큼 요리에 해박한 친구도 봤네. 최근엔 열 살쯤 된 꼬마 손님이 앙증맞은 눈망울로 “셰프가 되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어.

요리에 대한 관심이 커진 건 기쁜 일이야. 예전과 달리 조리사의 위상도 높아졌고. 다만 걱정스러울 때도 있다네. 겉만 보고 현혹되지만 요리는 끝이란 게 없는 힘든 길이거든.

그런 의미에서 ‘키친 컨피덴셜’은 일독을 권하고 싶네. 뉴욕의 유명 주방장 출신인 앤서니 보뎅이 직접 써 더욱 실감나지. 접시닦이에서 요리사에 이르는 험난한 과정도 잘 묘사됐고. 화려해 보이지만 어두운 구석도 많은 주방 안 세계도 담겨 있네. 물론 국내 현실과는 상당히 차이가 있으니 오해 말아.

‘앗 뜨거워’도 읽어 보게. ‘뉴요커’의 문학담당 기자였던 빌 버포드가 번듯한 직장까지 때려치우고 요리사로 나서는 내용이야. 세계적인 셰프인 마리오 바탈리 밑에서 당근 자르기부터 시작하는 수련 과정을 찬찬히 보여주지. 요리엔 일가견 있다고 큰소리치다가 우여곡절을 겪는 고생담이 누군가를 떠올리게 하더군. 아, A 군 자네라곤 안 했네.

요리는 좋지만 책은 싫다고? 그래 갖고 미식가라 하겠나. 좋아. 그럼 만화책은 어떤가. 세키야 데쓰지의 ‘밤비노’는 무협지 같은 재미를 선사할 걸세. 대학 졸업 뒤 진로를 고민하던 주인공의 요리사 성공기지. 뭣보다 정통 이탈리아 요리를 소재로 해 흥미진진하더군.

너무 셰프 중심의 책들만 이야기했나. 자네한테 요리사가 되란 소린 아니니 겁먹진 말게. 다만 주문할 땐 ‘빨리 빨리’를 외치고, 무슨 요리가 뜬다 하면 그것만 찾는 이들에게 요리에도 철학과 깊이가 담겨 있음을 슬쩍 일러주고 싶은 마음이었네.

그럼 요리사 얘길 벗어나 보지. ‘돈가스의 탄생-튀김옷을 입은 일본 근대사’란 책일세. 흔히 먹는 돈가스의 탄생 스토리를 다뤘더군.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의 근대 요리 역사서라고 할까. 음식은 갑자기 생겨나는 게 아니라 역사의 흐름과 맥을 함께한다는 걸 일깨워 주지.

사실 이 책들을 읽으면서 한숨이 나왔네. 부러웠어. 한국의 훌륭한 요리와 그 세계를 담은 멋진 책들이 어서 많이 나왔으면. 참, 자네가 한번 도전해 보면 어떨까. 그럼 그땐 진짜 미식가로 대접해 제대로 솜씨 한번 발휘해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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