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회 투병문학상]최우수상 임순화 씨 ‘내 아들의…’

  • 입력 2007년 7월 9일 02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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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나 여기서 찍을래요!”

아이는 손가락으로 ‘V’자를 그렸다.

“촌스럽게 사진 찍을 때마다 V자가 뭐니. 다른 포즈는 없어?”

“오늘 우리 반 친구들은 모두 소풍갔는데 나는 치료 때문에 못 갔잖아. 그 대신 내 백만 달러짜리 손가락을 많이 찍고 싶어.”

“그래 백만 달러짜리 손가락 많이 찍자. ‘말아톤’의 초원이는 백만 달러짜리 다리고, 내 아들은 백만 달러짜리 손가락이네.”

올해 16세인 아들은 초등학교 4학년 때이던 2002년부터 소아 류머티스를 앓고 있다. 손가락이 굳어서 잘 구부러지지 않는 아들에게 ‘V’자는 그나마 쉬운 것이다.

우리 집안의 불행은 태권도학원에 다녀온 아들이 두 뺨에 커다란 손자국이 난 채 집에 돌아오면서 시작됐다. 아이는 자기 방으로 들어가더니 소리 죽여 눈이 퉁퉁 붓도록 울었다. 평소에도 아들은 애원하듯 말했다.

“태권도학원 다니기 싫어. 피아노도 치기 싫어. 손가락이 아프고 이상해.”

그럴 때마다 나는 그저 ‘뚱뚱하고 손놀림이 빠르지 못해서 친구들이 놀리나 보다’ 하고 생각했다.

아이는 그날 두 주먹을 꽉 쥐지 못한다는 이유로 관장에게 몇 차례 뺨을 맞았다고 고백했다.

아들을 병원에 데려갔다. 원인을 알기 위해 아이는 여러 가지 힘든 검사를 받았다.

검사 결과는 류머티스. 아무 죄 없는 초등학생에게 왜 이런 난치성 질환이 찾아왔는지 그저 하늘이 무심할 뿐이었다. 아이의 손가락은 점점 굳어 갔고 두 다리도 플라스틱 표면처럼 딱딱해졌다. 아이는 입원해서 굳어 가는 손가락과 다리를 펴는 재활치료를 시작했다. 손가락에 손만 대도 아프다며 눈물을 흘렸다.

꾸준한 재활치료로 손과 발은 좋아졌지만 장기간 약물을 복용한 탓에 위가 아프다며 고통을 호소했다. 위궤양이었다. 헐어 버린 위에서 나온 피가 아이의 대변에 섞여 나왔다.

위 치료를 위해 모험을 하듯 꾸준히 먹던 류머티스 치료제를 끊었다. 그러자 아이의 통증이 다시 시작되었고, 피부가 거뭇거뭇해지는 증상이 악화됐다. 끊었던 류머티스 치료제를 다시 복용하기 시작했다. 검게 변한 피부의 원인을 정확히 진단받기 위해 등에서 살을 떼어내 조직검사를 했다.

혹시 또 다른 몹쓸 병에 걸린 건 아닌지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일주일 동안 우리 가족은 피가 마를 정도로 불안하고 초조했다. 류머티스로 인한 합병증이라는 진단이 나왔다. 자가면역병을 앓는 환자에게 나타날 수 있는 피부 변형이라는 것이다. 앓고 있는 병 때문에 생긴 병이라니 차라리 다행이었다.

현재 아이는 피부과 치료를 병행하고 있다. 검게 변해 가는 피부에 수십 차례 주사를 맞는다.

“엄마, 나 주사 안 맞고 그냥 이렇게 살다 죽으면 안 돼?”

고통에 못 이겨 엉엉 우는 아이를 보고 있노라면 차라리 내가 그 고통을 대신 할 수 있다면 좋을 듯싶었다.

아이와 나는 아마 평생을 이 병과 싸워야 할지도 모른다. 류머티스는 평생 낫지 않고 완화시키는 게 최선이라고 한다. 약의 부작용으로 위궤양과 피부질환이 생겨 고생한 적도 많았다. 아들은 어른도 견디기 힘들다는 고통을 잘 견뎌 주고 있다. 그래서 지금 우리는 이렇게 웃고 있다. 자신의 손가락이 백만 달러짜리라고 말하는 아들처럼 내 마음 속에도 ‘V’자를 새겨야겠다.

정리=이진한 기자·의사 likeday@donga.com

▼소아 류머티스 질환은…▼

성인이 아닌 경우에도 류머티스 질환이 생길 수 있다. 이는 인체 관절부위 등 각종 조직에 염증을 일으키는 자가면역질환이며, 면역조절 기능의 이상으로 발생한다.

증상은 처음 수개월에 걸쳐 관절이 뻣뻣해진다. 보통 자고 일어난 후 뻣뻣함이나 심한 통증을 느낀다. 대개 16세 미만의 나이에서 다른 원인 없이 6주 이상 관절염이 지속되면 소아 류머티스 질환을 의심해 봐야 한다.

소아 류머티스 관절염은 근본적인 치료가 힘들기 때문에 염증을 없애 주고 관절통을 완화해 주며 관절이 뻣뻣하지 않도록 도와 주는 재활치료를 하는 정도다. 치료 기간은 차이가 있으나 보통 몇 년이 걸린다. 이후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 1, 2년 더 치료해야 한다.

임순화 씨의 아들 조성신 군은 현재 관절에 큰 손상이 없고 많이 호전된 상태다. 피부가 딱딱해지는 피부 경화증이 동반돼 현재 피부과에서 스테로이드 주사 치료를 병행해서 받고 있다.

(도움말=유대현 한양대병원 류머티스내과 교수, 김영대 서울백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

▼심사평…슬픈 냄새 나는 질병 사랑 향기 나는 투병▼

예심을 거친 68편 하나하나가 훌륭한 글이었다. 심사하는 내내 투고된 작품들이 오히려 심사자의 삶을 살펴봐 주는 것 같아 감사하는 마음이 들 정도였다. 병은 슬픈 냄새가 나는 꽃인가 보다. 병에 걸린 순간 사람들 마음은 피어나 짙어지고 깊어진다. 그 마음들이 깃든 글들이라 다 간절하고 깊어 우열을 가리는 일이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최우수작으로 선정된 임순화 씨의 글은 소아 류머티스를 앓는 아들을 극진히 사랑하는 어머니 마음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또 어머니 마음고생을 덜 시키려고 아픔을 숨기는 아들의 마음도 섬세하게 그려져 심사위원들은 사랑의 훈훈함을 느낄 수 있었다.

간암 투병기를 쓴 김하규 군은 나이 어린 고교생인데도 병을 극복하고자 하는 굳은 의지가 돋보였으며, 빨리 건강을 회복해 사랑의 빚을 갚고자 하는 갸륵한 마음이 좋았다. 스무 살 꽃다운 나이에 유방암에 걸린 윤지원 씨는 내용도 좋았지만 글 솜씨가 탁월했다. 자기 연민을 떨쳐 버리고 씩씩하게 항암치료를 하면서 인생의 깊이를 발견해 나가는 윤 씨의 글은 너무 감동적이어서 눈물이 핑 돌 정도였다.

이번에 당선되지 않은 투고 작품들 가운데는 좋은 글이 많았음을 다시 한 번 밝히며 모든 환우가 하루빨리 병마를 극복하고 완쾌하기를 빈다.

이경자 심사위원장·소설가

수상자 명단

▽우수상=김하규 윤지원 ▽가작=기주연 김영혜 오현호 ▽입선=김만년 노현승 오정애 윤혜미 이규표 이영보 조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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