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에 만나는 시]조성국 ‘여름 한때’

  • 입력 2007년 6월 29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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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한때 - 조성국

가문 마당에

소낙비 온 뒤

붉은 지렁이 한 마리

안간힘 써 기어가는

일필휘지의 길

문득

길 끝난 자리

제 낮은 일생을

햇볕에 고슬고슬하게 말려

저보다 작은 목숨의 개미 떼

밥이 되고 있다

- 시집 '슬그머니'(실천문학사) 중에서

어떤 고승이 저처럼 가혹한 수행을 하였으랴. 눈도 버리고, 귀도 버리고, 코도 버렸다. 거추장스런 손발도 떼어버린 지 오래다. 아무리 아름다운 꽃과 음악과 산해진미도 저이를 유혹할 수 없다. 365일 컴컴한 토굴 속에서 흙을 베껴 흙 속에 썼다고 한다. 우리 딛고 선 땅이 숨 쉬는 이유는 그 때문이라고 한다. 꽃나무에 꽃 피고 가지에 새 우는 이유는 그 때문이라고 한다. 저 고승은 화장도 사치라 여겨 충장(蟲葬)이나 조장을 치른다고 한다. 남김없이 '나'를 던져 '너'가 된다고 한다.

- 시인 반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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