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행복을 만드는 ‘공간의 마술’ 아세요

  • 입력 2007년 6월 8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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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에다 4를 더하면 뭐가 될까요?” “음∼ 8, 아니 9.” 서연(4)이가 재빨리 정답을 맞혔다. 옆에서 열심히 손가락을 헤아리던 쌍둥이 다연이가 한발 늦자 토라졌다. 경기 고양시 일산서구 탄현마을 10단지의 한 아파트. 홍성태(36·BNC환경개발 부장) 김정아(31) 씨 부부와 쌍둥이 자매의 보금자리다. 이 집에 들어서면 유럽의 어느 카페에라도 온 듯 색다른 느낌을 받는다. 현관 문 옆에는 철제 단조로, 벽에는 붙이는 등 4개로 멋을 냈다. 벽면은 블루와 화이트 톤으로 깔끔한 분위기다. 대부분 가정의 베란다엔 허드레 물건이나 빨래 건조기, 몇 개의 화분 따위가 있지만 이 집은 다르다. 우선 베란다로 통하는 통유리에는 얇은 나무 바를 부착해 격자무늬를 만들었다. 베란다에는 장식용 벽난로, 차와 작은 소품을 놓을 수 있는 아담한 테이블이 놓여 있다. 27평형 아파트가 40평형대 아파트처럼 넓어 보인다.》

집.

경제적 가치를 높이는 재산만은 아니다. 가장 소중한 의미는 가족의 행복을 가꾸는 공간이라는 점일 것이다.

‘사랑지수’를 높이는 가족 공간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서울 서초구는 지난달 ‘화목을 부르는 가족 어울림 공간’이라는 주제로 주거 공간 우수 활용 사례를 전시했다. 또 일본의 명문 중학교에 자녀를 입학시킨 가정의 주거공간을 분석한 책 ‘머리 좋은 아이로 키우는 집’이 국내에서도 출간돼 인기를 끌고 있다.

가족 구성원들의 커뮤니케이션이 활발해져 가족 사랑을 키울 수 있는 ‘공간의 마술’을 소개한다.

○ 우리 가족이 달라졌어요

결혼 6년차인 홍 씨 집도 처음에는 다른 가정과 마찬가지였다. 거실은 TV, 부부 침실은 침대가 주인공이었다. 하지만 지난해 이곳으로 이사하면서 아내가 한때 우울증에 시달렸다.

“쌍둥이를 출산한 뒤 두 아이를 한꺼번에 키우느라 육체적, 정신적으로 너무 지쳤죠. 외출이 힘든 데다 아는 사람도 없는 낯선 곳으로 오자 스트레스가 더 심해졌습니다.”(김 씨)

부부가 찾은 해법은 집안 구조를 바꿔 가족 커뮤니케이션의 농도를 높이는 것. 인테리어에 관심이 많은 김 씨가 감독을 맡았고 남편이 조감독 역할을 자청했다.

먼저 거실에 ‘왕’처럼 버티고 있던 TV를 부부 침실로 보냈다. 거실과 주방으로 이어지는 가장 넓은 공간은 콘셉트를 유럽풍 카페로 설정했다. 벽면 한쪽은 아내의 지시를 잘 따르는 ‘조감독’의 사기를 고려해 그가 좋아하는 블루 톤으로 도배했다. TV가 있던 벽 쪽에는 4단 크기의 책꽂이 두 개를 놓은 뒤 아이와 부부가 자주 보는 책을 꽂았다.

공간 마술의 또 다른 포인트는 쌍둥이를 위한 놀이방이다.

이곳에는 재미있게 공부할 수 있는 대형 보드, 소형 텐트, 천장에 붙는 소품용 열기구가 있다. 웬만한 어린이집의 놀이방을 연상시킨다.

주목할 점은 이 프로젝트가 순전히 부부의 아이디어와 땀으로 완성됐다는 것. 놀이방에 36만 원, 거실 인테리어에 70여만 원이 들어갔다. 거실의 경우 책장(두 개 36만 원)과 이동 가능한 아동용 소형 책상 세트(13만 원)를 빼면 거의 돈을 쓰지 않았다.

공간을 바꾼 뒤 쌍둥이네는 긍정적인 변화를 겪고 있다. 홍 씨는 TV를 보는 대신 거실에서 아이들과 놀면서 아내와 대화를 자주 하게 됐다.

“요즘 연애시절로 돌아간 것 같습니다. 또 공간을 바꾸면서 손님이 많아졌어요. 인테리어를 구경하는 주부 손님과 예쁜 놀이방에서 놀려는 쌍둥이 친구들이죠.”(김 씨)

○ 가족끼리 눈을 맞추는 즐거움

“대한민국은 어디에 있을까?”

“여기.”

“비슷한데 아니네. 다시 찾아볼까.”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의 한 아파트.

서정선(35·여·삼성출판사 홍보팀장) 씨와 딸 다윤(7)이가 지구본을 돌리며 나라찾기 놀이를 하고 있다. 대화가 이뤄지는 곳은 공부방이 아니라 주방이다.

이 집에는 식탁이 없다. 그 대신 싱크대 끝에 설치돼 거실을 향하고 있는 대면형 테이블이 식탁 역할을 한다. 식사뿐 아니라 아이가 공부를 하고 부부가 차를 마시면서 대화를 나누는 공간이기도 하다. 서 씨는 퇴근 뒤 저녁을 준비하면서 바로 옆에서 공부하는 아이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세 식구가 살기에 31평형이 좁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지난해 3월 이곳으로 이사하면서 식탁을 치워 버렸죠. 맞벌이 부부라 부모와 아이, 그리고 부부 간에 대화할 시간이 부족했습니다.”

서 씨의 집에서도 의미 있는 변화가 시작됐다. 아이가 책을 읽다가 요리하는 엄마의 모습이 흥미로운 듯 잔심부름을 하고, 남편도 자주 주방 일을 돕는다.

아이 방이 따로 있지만 다윤이는 거의 머무르지 않는다. 주방 근처에서 공부하거나 거실에 있는 이동용 책상에서 그림을 그린다.

서 씨는 “공부방에서 꼼짝 말고 책을 보라고 하기보다는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하고 싶은 일을 하도록 한다”며 “가족들이 서로 눈을 맞추는 시간이 늘어난 게 공간 변화의 가장 큰 혜택”이라고 말했다.

○ 주제가 있는 집을 만들라

공간 연출의 포인트는 적절한 콘셉트를 정하는 것이다. 가족에게 가장 필요한 것을 중심으로 공간을 바꿔 주는 전략이 뒷받침돼야 한다.

대구에 사는 윤찬희(37) 씨는 집안 전체를 작은 도서관 스타일로 꾸몄다. 딸(10)이 크면서 어떻게든 TV와 거리를 둬야겠다고 생각한 것. TV를 거실 한쪽 구석으로 옮기고 집안 곳곳에 테이블을 설치해 아이가 돌아다니면서 그림을 그리거나 책을 읽을 수 있도록 유도했다. 벽면에도 틀에 박힌 가족사진 대신 가족이 그린 그림이나 편지, 만화 등을 배치했다.

윤 씨는 “아이에게 별도의 공부방을 주지 않아도 엄마 아빠와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다면 그게 가장 좋은 공부방이 될 것이라고 판단했다”며 “도서관처럼 꾸며진 거실에서 가족이 이야기하는 시간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참공간 디자인연구소’의 이명희 대표는 “요즘은 가족이 자연스럽게 대화하고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을 넓혀 달라는 요구가 늘고 있다”며 “공부방, 주방, 침실, 거실 등 전통적인 방식으로 공간을 구별하는 것은 낡은 고정관념”이라고 말했다.

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가족공간을 위한 팁

# 커뮤니케이션 지수를 높여라

아이들이 어리다면 가장 큰 방을 아이들의 침실을 겸한 놀이방으로 꾸며라. 부부 침실이 가장 넓어야 한다는 것은 낡은 생각이다.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는 동화적 분위기의 동그란 침대에서 책도 보고 뒹굴며 스킨십의 기회를 늘릴 수 있다.

집이 다소 좁다면 작은 방을 터서 부부와 아이들이 공유하는 가족 방을 꾸밀 수도 있다.

아이들이 성장했다면 공동 서재가 좋다. 독서와 놀이가 가능한 공간으로 만든다. 온 가족이 모여 TV를 보는 것보다 효과적이다. 집안의 가장 큰 공간인 거실에서 TV를 치우고 서재로 꾸미는 사례도 많다.

# 주부의 공간을 만들어라

주방은 주부에게 가장 친숙한 공간이다. 그러면서도 반찬 냄새와 가사노동의 지긋지긋함이 배어 있는 곳이다. 하지만 조금만 신경 쓰면 취미 활동이 가능한 공간이 된다. 거실 쪽으로 향하는 아일랜드 작업대를 설치하면 공간 전체가 깔끔해진다. 조리 시설과 가까워 차를 마시기 좋고 독서 공간으로도 부족함이 없다.

# 부부 금실이 좋아지는 공간을 꾸며라

퇴근 후 집에 오면 만사가 귀찮고 피곤하다. 이때 ‘럭셔리’한 월풀 욕조가 있다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깔끔한 공간에서 휴식을 취하며 부부가 차를 마시거나 정담을 나눌 수도 있다. 집이 좁아도 방법은 있다. 창고처럼 쓰거나 쓰임새가 없는 작은 방을 욕실로 만드는 것이다.

# 가장의 기(氣)를 살려라

가장의 어깨가 올라가면 가족 전체가 행복해질 수 있다. 작은 베란다에라도 아버지의 공간을 만들자. 베란다나 옥탑의 자투리 공간을 가장의 방으로 꾸미는 사례가 적지 않다. DVD나 음향시설을 설치하면 ‘완전한 휴식’이 필요한 가족 구성원 모두의 공간이 된다.

참공간디자인연구소 이명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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