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 답사기 30선]<16>실크로드 문명기행

  • 입력 2007년 4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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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아시아에서 화려하게 꽃핀 이슬람의 건축 문화에 황홀해지고, 이란에서는 오리엔트 문명의 정화를 응축한 중동 최대의 문명유적 페르세폴리스와 1500여 년간 꺼지지 않고 타오르는 조로아스터교의 성화 앞에서 숭엄한 감회에 젖기도 했다.》

아주 우연한 기회에 이 책 ‘실크로드 문명기행’에 관해 대화를 나누는 어느 북포럼에 참석한 적이 있었다. 그 모임에서 저자인 정수일 선생이 들려주는 맛깔스러운 얘기는 참가자 모두를 신비와 선망으로 가득 찬 ‘실크로드의 세계’로 빠져 들게 하였다. 저자는 기행문의 가치야말로 ‘시대의 실록’이라는 점에 있다고 강조했다.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이란 실록이 없었던들 콜럼버스의 이른바 ‘신대륙 발견’은 결코 없었을 것이다.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알렉산드리아 파로스 등대에 관한 중세 아랍 대여행가 이븐바투타의 현장 기록은 파로스 등대에 관한 유일한 실록이다.”

저자의 말처럼 오늘의 ‘기행 실록’은 후손에게 물려줄 역사 현장에 대한 생생한 실록으로서 그 값어치는 자못 크다고 할 것이다.

이 실크로드 실록의 초점은 어디까지나 우리 것에 맞춰져 있어 더욱 감동적이다. 중국 시안(西安)에서는 혜초와 원측 등 선현들의 행적을 재확인했고, 둔황(敦煌) 막고굴의 벽화에선 혜초 스님의 입적지를 추적할 수 있는 단서를 포착했으며, 쿠차 키질석굴에 이르러선 걸출한 동포화가 한낙연의 업적과 유작들을 역사의 먼지 속에서 찾아냈다.

그뿐만 아니라 키르기스스탄과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에서는 고구려 유민 고선지 장군이 거룩한 발자국을 남긴 탈라스 전쟁터를 밟아 봤고, 유럽 문명의 토대 ‘종이의 길’을 트게 한 사마르칸트 제지공장의 전통 제지술 복원과정을 현장에서 지켜봤으며, 사마르칸트 아프라시압 궁전 벽화 속의 고구려 사절을 통해 고대 한국인의 국제교류상도 입증하였다.

그런가 하면 이란에서는 석류와 격구의 고향을 찾아 그 옛날 두 나라 사이에 오간 문물의 교류상을 더듬었으며, 이스탄불 토프카프 궁전박물관에서는 그토록 애타게 찾던 우리네 도자기의 흔적을 실증할 법한 유물도 발견했다. 저자는 “이 모든 유물들은 분명 우리의 역사와 문화의 단면들을 보여 주는 무언의 증인들”이라고 말한다.

저자의 이 같은 간절한 주장과 논리는 필자가 추구하는 ‘디지털 문화유산’ 역시 한반도 영내에 국한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해 주었다. 외국에 남아 있는 한민족 관련 문화유산도 디지털 문화유산의 범주에 포함시키도록 다짐하게 했으니 필자에겐 실로 값진 개안(開眼)의 계기였다.

그래서 그날 북포럼이 시작될 때는 그저 실크로드에 대한 담담한 관조자(觀照者)였으나, 북포럼이 끝날 무렵엔 어느덧 나 자신도 실크로드 도상(途上)의 한복판에 서있음을 느꼈다.

이렇듯 이 책은 교류의 무한 확산 시대에 실크로드에 관한 의미 있는 문명기행서다. 우리 문화와 아무 상관이 없을 성싶은 실크로드의 먼 지점에서도 우리의 문화를 새삼 재확인해 주면서 그 도도하고 서사적인 흐름을 보여 준다. 실크로드의 갈피마다 찍혀 있는 우리 문화의 흔적을 되새겨보면서 한(韓)문화를 일궜던 옛사람들에 대해 다시 한 번 높은 자긍심을 느낀다.

박진호 KAIST 문화기술 연구센터 선임연구원 문화재디지털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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