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한국 현대사의 재조명’

  • 입력 2007년 2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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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년 11월 판문점에서 휴전협정에 착수한 유엔군과 북한군 장교가 새 휴전선 설정을 논의하기 전 지도에 기존 38선을 긋고 있다. 국제요소와 국내요소가 복합된 분단의 중층적 성격을 잘 보여 주는 사진이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1951년 11월 판문점에서 휴전협정에 착수한 유엔군과 북한군 장교가 새 휴전선 설정을 논의하기 전 지도에 기존 38선을 긋고 있다. 국제요소와 국내요소가 복합된 분단의 중층적 성격을 잘 보여 주는 사진이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한국 현대사의 재조명/한국전쟁학회 편·582쪽·2만3000원·명인문화사

지구상에서 유일한 냉전체제의 살아 있는 박물관으로 한국 현대사는 여전히 다양한 이데올로기의 핀셋에 고정된 채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다.

분단의 책임이 미국과 소련에 있다는 ‘외인론’과 이들을 등에 업은 채 이념투쟁에 몰두한 국내 정치세력에 있다는 ‘내인론’은 양자를 수렴한 복합론의 핀셋 위치를 둘러싸고 줄다리기가 한창이다. 6·25전쟁이 내전이냐 국제전이냐, 통일전쟁이냐 아니냐를 놓고 펼쳐진 논쟁은 이런 기(氣) 싸움의 연장선상에 있다.

14명의 정치학자, 역사학자, 사회학자, 군사학자가 필자로 참여한 이 책은 심층적 문제의식과 참신한 발상의 전환을 통해 이념의 족쇄에 묶인 한국 현대사를 새롭게 조명하고 있다.

이 중 관심을 끄는 것은 이완범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와 박명림 연세대 국제대학원 교수의 글이다.

1장 ‘한반도 분단의 성격’과 6장 ‘6·25전쟁은 복합전으로 시작되었다’를 통해 필자들 중 유일하게 2편의 글을 기고한 이완범 교수는 내인론과 외인론의 변증법적 역학관계를 포착한다. 언뜻 복합론으로 수렴되는 것처럼 보이는 이 논쟁이, 무엇이 필요조건이고 충분조건이냐는 무게중심의 이동을 통해 재생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를 비판적으로 극복하기 위해 세계 각국 분단사례와의 공시적 비교와 남북한의 역사적 상황 전개에 따른 통시적 비교, 두 개의 축을 통해 이를 재구성한다. 공시적 비교를 통해선 △독일, 오스트리아, 베트남의 분단 유형이 외인론이 더 크게 작용한 국제형이고 △중국은 내인론이 더 크게 작용한 내쟁(內爭)형이라면 △남북한은 외인과 내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복합형이라는 결론을 끌어낸다. 그런 다음 남북의 시대적 변화에 따라 국제형(1945년)-국제적 성격이 강한 복합형(1948년)-명실상부한 복합형(1953년)-내쟁적 성격이 우세한 복합형(1972년)으로 변화해 왔다고 분석하며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분할 그 자체는 외세가 가져다준 것이지만 분단 고착화는 우리가 자초한 것이라는 견해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박명림 교수의 ‘한국 분단의 특수성과 두 한국’에서는 고차원의 방정식을 펼친다. 그는 국제 냉전구도와 남북 분단을 등질화하는 문제점을 지적하며 분단 문제를 국제-지역-민족이란 3층 구조의 복잡한 관계학으로 분석했다.

박 교수는 △미국과 소련의 국제대결 구조 △중국과 일본의 동아시아 지역대결 구조 △적대적 의존 또는 공생적 적대 관계로 설명되는 남북의 대쌍관계동학(남과 북이 쌍으로 엮여서 서로 끊임없이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 등 3중 구조가 겹쳐 있기 때문에 미소의 냉전 구조 해체만으로는 분단 문제가 풀리지 않는다고 분석했다. 또 미국이 유럽 등 다른 지역에서와 달리 동북아에서만 지역다자안보체제가 아니라 동맹체제에 기초한 안보정책을 추진한 탓에 한반도에선 국제냉전 구조(한미동맹)와 민족냉전 구조(민족공조)가 불가분의 상관관계를 갖게 됐다는 통찰도 예리하다.

그는 이를 바탕으로 1945∼1953년 분단 고착기, 1953∼1970년 북한 우위의 적대적 균등 관계, 1971∼1988년 남한 우위의 적대적 균등 관계, 1989년∼현재의 냉전 해체와 남북 격차의 고착으로 인한 비대칭적 ‘적대적 의존’ 관계로 전환된 남북 분단의 해결 고리를 국제 문제이자 동아시아 문제이면서 남북문제인 ‘북핵 문제의 해소’에서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밖에도 책 속에는 38선 확정의 문제, 이산가족·포로 문제, 6·25전쟁 기억의 문제, 6·25전쟁의 국제정치적 군사적 의미, 정전체제의 평화체제 전환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한 최신 연구성과들이 담겨 있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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