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정달호]이집트에 한국문화원 둘 때다

  • 입력 2007년 2월 8일 03시 01분


이집트를 찾는 한국 사람이 2005년 5만여 명에서 2006년 6만여 명으로 한 해에 20%나 늘었다. 글로벌 시대에 바깥 세계와 다른 문명에 대한 시야를 넓힌다는 점에서 매우 바람직한 현상이다.

이집트는 기원전 332년 알렉산드리아의 이집트 정복 이후 그리스 문화와 이집트 고유문화를 혼합한 헬레니즘 문화를 꽃 피워 동서양 문화 교류의 교차로 역할을 했다. 또 기원후 7세기 중반부터 아랍화되면서 이슬람 문화와 학술의 중심지가 됐다.

19세기 후반부터 이집트는 영국과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국가의 영향 하에서 아랍국가 중 유럽식 근대화를 가장 먼저 추진했다. 헬레니즘 시대의 알렉산드리아가 고대 코스모폴리스의 전형이었듯, 카이로 역시 유럽인이 몰리는 코스모폴리탄의 도시가 됐다. 현대에 와서는 외세로부터의 독립을 갈구하는 민족주의 운동과 함께 사회주의적 실험을 겪으면서 빈곤과 저개발의 늪에 빠졌다.

긴 역사를 거치면서 다양한 문화가 섞인 이집트는 7000만 명이 넘는 인구와 문화적 창의력을 바탕으로 여전히 아랍 세계에서 문화적 중심지 역할을 한다. 요즘 아랍에서 보는 영화와 TV 드라마 중 대부분은 이집트에서 만들었다. 아랍 연예인이 이름을 날리려면 먼저 카이로 무대에서 성공해야 할 정도로 이집트는 아랍 대중문화의 메카이다.

이집트가 최근 한국에 대해 관심을 쏟는 이유는 경제와 개발의 협력자로서뿐만 아니라 문화적 동반자로 보기 때문이다. 이집트를 비롯한 아랍국가에서 한국학이 인기를 끌고 한국어 학과가 생기는 현상이 이를 증명한다. 이들의 여망을 수용하면서 이슬람 세계에 균형 있게 접근하기 위해 카이로에 한국문화원을 설치하는 일이 시급하다.

아랍과 아프리카를 아우르는 지리적 요충인 이집트에 한국문화원을 설치해 한국학과 한국문화를 확산시키고 한국문화(또는 유교문명)와 이슬람 문명의 교류센터 역할을 해야 한다. 문화충돌론이 여전히 화두가 되는 오늘날 많은 갈등과 폭력이 이 지역에서 분출하는 만큼 좀 더 객관적인 시각으로 이슬람 세계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세계 주요 문화권에 한국문화원이 있는데 중동과 아프리카에만 없다는 사실은 이슬람 세계의 외면이라는 무책임한 발상을 반영한다. 한국문화 외교가 교량적 역할을 할 때가 왔다.

정달호 주 이집트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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