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사람들의 친구’ 제정구, 그가 남긴 신앙고백

  • 입력 2007년 2월 7일 20시 31분


백발에 거뭇한 얼굴, 앙 다문 야문진 입술, 세상의 온기를 사랑했던, 그래서 정반대의 세상에 고뇌하며 연신 줄담배에 불을 붙이던…. '빈자의 영원한 친구' 제정구(사진) 전 의원이 9일로 세상을 떠난지 8주기를 맞는다. 그의 추모식에 때맞춰 '제정구 기념사업회'(이사장 김학준)가 '제정구의 성결풀이-사람의 길'이라는 추모집을 펴냈다.

제 전 의원이 1983년부터 1987년까지 '경향잡지'에 기고했던 주일 성결풀이를 묶어낸 책이다. 이 책에는 안양천변 양평동 판자촌 주민들을 이끌고 경기 시흥군 신천리에 '복음자리' 공동체를 이끌었던 제 전 의원의 신앙고백이 담겨있다. 신앙고백이지만 개인적이지 않고, 세상을 덮고 있던 어둠과 부정의를 뛰어넘겠다는 강한 예언자적 의지를 엿볼 수 있다.

이사야서 42장 1~7절(야훼의 종의 첫째 노래)을 풀이하면서 그는 야훼의 정의의 개념을 "부러진 갈대처럼 쓸모가 없다하여 잘라버리는 효용가치위주의 정의도 아니요, 깜박거리는 심지처럼 비능률적이라 하여 밟아 버리는 능률위주의 정의가 아니란 말이다"고 정부의 무자비한 판자촌 철거에 항거한다.

그러면서도 "미움을 버리고 원한을 품지 않는 것은 참으로 어렵고 힘든 일이지만 자유와 해탈의 길은 그 길 뿐"이라고 고백한다.

김수환 추기경의 축사도 마음을 울린다. "그 때 정착촌(복음자리)에 내 방을 마련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곳에 여러 번 가 보기는 했으나 자고 온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공동 화장실을 사용해야하는 등 불편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라서 자고 가라고 할 때마다 슬금슬금 꽁무니를 뺐습니다."

윤영찬기자 yyc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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