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주연 커플을 위해 다같이 축배의 노래를”

  • 입력 2007년 1월 11일 20시 3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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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오후8시(한국시간 11일 오전10시) 세계 최고 권위의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극장(메트). 3800여개 좌석의 객석을 가득 메운 관객들이 숨을 죽인 채 무대를 응시했다.

세 시간이나 공연을 줄곧 서서 봐야 하는 입석도 이날은 매진됐다. 공연 작품은 메트의 간판 작품인 베르디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춘희)'.

전주곡이 끝나고 막이 열리자 화려한 의상을 입은 여주인공 비올레타가 모습을 드러냈다. 비올레타는 메트 고정팬들에게 익숙한 한국인 소프라노 홍혜경씨(47). 이어 등장한 남자 주인공도 분장 아래 동양인의 얼굴이 뚜렷했다. 객석에서는 "그러고 보니 오늘은 주인공 남녀가 모두 한국인이었군"이라는 속삭임이 들렸다.

사실이었다. 이날 메트의 주인공은 단연 홍 씨와 알프레도 역을 맡은 소프라노 홍혜경씨(47)와 테너 김우경씨(29)였다. 127년 메트 역사상 동양인이 한 무대에서 남녀 주역을 맡은 것은 이날이 처음이었다.

더군다나 김씨에게 이날은 메트 데뷔 무대. 그러나 그는 수없이 이 무대에 오른 테너처럼 당당해 보였다. 화려한 전주에 이어 김씨가 귀에 익숙한 '축배의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모든 오페라의 2중창 중에서 가장 유명한 곡이다. 김씨의 노래를 홍씨가 받아 부르고 합창이 이어지면서 관중들은 감전된 듯 무대에 빨려 들어갔다.

오페라의 백미는 남녀 주인공이 부르는 아리아. 오랜 관록의 홍씨가 화려한 기교와 고난도의 고음을 요구하는 아리아 '언제나 자유롭게'를 완벽하게 소화하자 관객들의 우뢰 같은 박수가 터졌다.

김우경씨의 미성(美聲)도 공연이 1막-2막-3막으로 이어질수록 더욱 빛을 발했다. 고음의 달콤한 목소리가 극장을 압도하면서 관객들은 베르디 오페라의 진수에 빠져 들어갔다. 극장 전체를 쩌렁 울리는 볼륨(소리 크기)도 압도적이었다. 김씨의 힘찬 아리아가 끝날 때마다 '브라보!' 함성과 박수소리가 이어졌다.

비올레타가 알프레드와 재회해 짧은 행복을 누린 뒤 죽는 장면 공연이 끝나자 시간은 이미 오후11시. 귀가 길을 재촉해야 할 시간이다. 그러나 관객 대부분은 자리를 떠나는 대신 긴 기립박수로 홍씨와 김씨를 포함한 출연진의 멋진 공연을 축하했다.

객석 곳곳에서 '대단했어' '좋은 공연이었어'라는 말이 들렸다.

한 관객은 "우리를 울 게 하고 때로는 웃도록 하는 것, 바로 그것이 오페라야"라고 말하면서 행복해했다. 이날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극장에서 콧대 높은 뉴요커들을 울리고 때로는 웃도록 만든 두 주역이 바로 한국인이었다는 사실이 한없이 마음 뿌듯했다.

뉴욕=공종식특파원 k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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