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늘 그리웠소”…한센 병력 노인들 ‘40년만의 나들이’

  • 입력 2007년 1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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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오후 20여 년 만에 서울 나들이에 나선 한센병 환자 권영석 할아버지가 6·25전쟁 때 전사한 형의 위패가 있는 국립서울현충원을 찾아 눈물을 흘리고 있다. 김미옥 기자
10일 오후 20여 년 만에 서울 나들이에 나선 한센병 환자 권영석 할아버지가 6·25전쟁 때 전사한 형의 위패가 있는 국립서울현충원을 찾아 눈물을 흘리고 있다. 김미옥 기자
전 루치아 할머니가 10일 오후 서울 중구 정동 프란치스코 회관에서 딸을 부둥켜 안고 있다. 김재명기자
전 루치아 할머니가 10일 오후 서울 중구 정동 프란치스코 회관에서 딸을 부둥켜 안고 있다. 김재명기자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은 여전히 경계를 풀지 않았다. 40여 년 만의 서울 나들이. 천국보다 낯선 서울의 한복판에서 그들은 여전히 이방인이다. “우리 자식들이 알면 안 돼”라며 끝까지 이름을 밝히지 않은 한 할머니는 연방 목도리를 끌어올리며 얼굴을 가린다. 코가 내려앉은 임레오나르도(78) 할아버지의 검은색 선글라스는 화해를 거부해 온 세상을 가르는 두꺼운 경계 같았다.

10일 오후 1시 40분 국립서울현충원에 도착하는 것으로 경남 산청군 프란치스코회 성심원(원장 박영선 수사) 소속 한센인들의 서울 나들이가 시작됐다.

서울 종로구 관철동이 고향인 최루치아(72) 할머니는 휠체어를 타고 있었다. 1964년 한센병에 걸려 갓 태어난 3남매를 보육원에 보내고 쫓기듯 성심원에 들어온 지 43년 만의 외출이다. “정면 사진은 찍지 말아 주세요.” 보도진이 최 할머니에게 몰리자 이들을 모시고 온 임재순 팀장이 신신당부한다. 사위와 두 며느리는 최 할머니가 한센병에 걸렸다는 사실조차 모른다. 물론 만나 본 적도 없다. 가족사를 묻자 얼굴을 가린다. 앙상한 뼈마디 속에서 가녀린 흐느낌이 들린다.

30년 전 서울을 스치듯 한 번 들렀다는 박순란(70) 할머니. “서울이 너무 좋지예”라면서도 얼굴에서 웃음기를 찾기가 힘들다. 이날 상경한 10명의 한센인 모두가 그랬다. 마치 약속이나 한 듯, 태어나 한 번도 웃어본 적이 없다는 듯….

권영석(77) 할아버지는 그래도 당당했다. 20여 년 만에 무명용사비를 찾아 6·25전쟁 당시 전사한 형에게 국화 몇 송이를 올렸다. 아내와 동행한 권 할아버지는 자녀들과 비교적 자주 만나는 편이다. “죽기 전에 여기 와보는 것이 소원이었다”는 권 할아버지는 “감개가 무량하다”는 말을 되뇌다 끝내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일행 중 4명은 1박 2일의 짧은 여정에서 가족과 만난다. 이들에게 가족은 무엇일까. 만남의 설렘보다는 만남 이후를 더 걱정해야 하는 이들은 가족에 대해 ‘죄인 아닌 죄의식’을 가지고 있다. 이 때문이었을까. 이날 저녁 서울 중구 정동 프란치스코회관에서 방송 카메라 기자들이 가족상봉 장면을 찍자 화가 난 임 할아버지가 “너희들은 여기서 나가”라며 자녀들을 밀쳐내기도 했다.

한 할머니의 자녀들은 이날 예정된 만남을 11일로 미뤘다. 10일의 가족 상봉이 이례적으로 대외에 공개됐기 때문이었을까. 어머니를 어머니라 맘 놓고 부르지 못한 자식들의 마음은 또 어떠했을까.

이들의 나들이는 한강유람선 탑승, 남산, 청계천, 명동성당 등을 방문한 뒤 11일 끝이 난다. “여러분은 감격적이고 떠들썩한 고향 방문을 생각했겠지만 어르신들에게는 너무나 가슴 아픈 귀환입니다.” 임 팀장은 “한센병은 요즘 독감만도 못한 병인데도 한센인을 보는 세상의 눈은 여전히 너무나도 차갑다”며 “세상의 편견과 벽을 넘어 용기 있게 나들이를 나온 어르신들에게 따스한 손을 내밀어 달라”고 강조했다.

윤영찬 기자 yyc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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