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꽃 닮은 詩人들, 겨울을 꼭 안아주네

  • 입력 2006년 12월 29일 03시 00분


《기온이 뚝 떨어졌습니다.

바람이 매섭습니다. 겨울 맛이 나지요.

세 사내가 있습니다.

20대에 시인이 되었고 시처럼 살아왔으며 이제 중년이 된 이 사내들.

시처럼 살았다는 말은, 굴곡 많은 인생이지만 마음은 한결같이 순했다는 뜻입니다.

뮤즈가 불러주는 노래를 받아쓰는 시인들은 마음이 맑고 순결하다지요.

이들이 나란히 산문집을 냈습니다.

김사인(51) 시인의 ‘따뜻한 밥 한 그릇’(큰나), 이문재(47) 시인의 ‘이문재 산문집’(호미), 함민복(44) 시인의 ‘미안한 마음’(풀그림).

세 권 모두 시만큼이나 아름답고 섬세한 글모음집입니다.

산문이야 인생에서 건져 올린 성찰을 진솔하게 들려주는 글이지만, 겨울에 나온 책들이어서인지 겨울을 소재로 한 얘기 중에 은근히 와 닿는 게 적잖습니다.

삼인삼색, 사내들의 겨울은 저마다 빛깔은 다르지만 마음은 하나입니다.》

김사인 “아랫목에 밥공기 묻던 어머니 그리워”

김사인 씨. 원고 받으려면 가둬놓고 쓰게 해야 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과작(寡作)의 시인이다. 오죽하면 등단 25년에 시집이 단 두 권뿐일까. 그런 그답게 산문집도 ‘강제’가 아니었으면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그 ‘강제’란 라디오 불교방송(BBS FM) ‘살며 생각하며’라는 프로그램. 진행자인 그가 직접 쓴 오프닝 멘트가 책으로 묶여 나왔다. 길어야 원고지 4장, 산문이라 하기에도 쑥스럽다. 그런데 글 하나하나가 따스하다. 추운 날에는 “요즘이야 전기밥솥이 예약 취사에 보온까지 다 알아서 해줍니다만, 어릴 적 밥 한 그릇 가득 담아서 그새라도 식을까봐 얼른 아랫목에 넣으시던 어머님의 정성스러운 손길을 떠올리면, 새삼 마음이 편안해집니다”라고 훈훈한 멘트를 날린다. 스위치 하나 누르면 더위도 추위도 불러오는 세상에 살면서 “물, 불, 바람의 본질적인 야생성에 대한 감각을 잃어가고 있는 게 아닌가” 시인은 생각해 본다.

이문재 “계절을 추방한 도시인들 딱하기만 해”

이문재 씨는 부지런히 글을 쓰는 스타일이어서 ‘청탁 불문’의 결과로 첫 산문집을 묶었다고 한다. 제목은 정직하게도 ‘이문재 산문집’. 시인의 몸에 기자의 옷을 걸치고, 일 중독자로 살았던 그는 최근 그 옷을 벗었다. 그랬더니 아날로그의 아름다움이 보이더란다. 농부의 아들로 자란 그의 눈에 도시 사람들은 딱해 보인다. 냉장고가 없던 시절, 굴은 김장철이 아니면 만날 수 없는 제철음식이었다. 겨울날 “굴 한 접시에 간장 한 종지기. 숟가락 가득 굴을 담고 그 숟가락을 간장에 살짝 찍은 다음, 한입에 먹는” 장면을 따라 읽다 보면 절로 군침이 돈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제철 음식 맛을 모른다. 겨울에도 “비닐하우스 안은 일년 내내 여름”이다. 시인은 “자연으로부터 멀어진, 계절을 추방한” 도시 사람들이 그렇게 안타까울 수가 없다.

함민복 “이 겨울 누군가에 따뜻한 존재이고 싶소”

10년 전, 아무 연고도 없는 강화도에 터를 잡은 함민복 씨. 동료 시인들은 훌쩍 서울을 떠난 그가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처음엔 주민들도 서먹해 했던 ‘시인 함민복’은 지금은 낙지며 새우를 능숙하게 잡아 생계를 이어가는 ‘어민후계자 함민복’이 됐다. 시인이 그려주는 겨울 텃밭 풍경 하나. “먹을 것 없는 새들 날아와 먹으라고 털지 않은 고욤이 눈 내린 텃밭에 듬성듬성 떨어졌습니다. 검고 쪼글쪼글하지만 단 고욤알. 텃밭은 누가 봉송으로 돌린 백설기 한 켜 같았습니다.” 또 그는 어느 겨울 ‘춥게 살지 말라고’ 독자들이 기름 값을 보내준 것도 잊을 수 없다. “세상에 고마워할 일이 이렇게 많구나, 나도 누군가에게 따뜻한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마음마저 일깨워준다”고 시인은 말한다.

사내들의 고운 산문은, 히터 빵빵하게 나오는 집에 있거나 사무실에서 일하면서 바깥 추위에 누군가 떨고 있으리라는 생각은 하지도 못하는 우리 모습을 부끄럽게 한다. 추위는 온기의 소중함을 알려주지 않느냐고 시인들은 조용히 일러준다. 몸의 온기뿐 아니라 마음의 따스함이 이 추운 겨울에 얼마나 필요한지를.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