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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6년 12월 6일 18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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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의 검열 기준이 얼마나 세세했는지를 보여주는 검열 기준들이다.
서울대는 규장각 한국학연구원은 7, 8일 '일제하 한국과 동아시아에서의 검열에 관한 새로운 접근'이라는 주제로 심포지엄을 연다고 6일 밝혔다.
심포지엄에서는 광고, 영화, 연극, 문학, 미술, 음악 등 문화 전반에 걸쳐 이뤄진 일제의 검열 조치에 관한 연구 결과가 발표된다.
"백성을 행복하게 만들어야 하는 관리들은 세간을 돌보지 않고 먹고 노래 부르고 향락에 빠질 뿐, 의리의 검을 손에 잡고 정의를 부르짖는 자가 없기 때문에 백성은 단지 악마 같은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을 원망하고 있다." (1940년 잡지에 게재된 '홍길동전')
하지만 일제는 위 글에 대해 "공산주의 색채가 농후하다"며 삭제 처분을 내렸다.
이럼 엄혹한 현실에서 국내 작가들은 검열을 빠져나가기 위한 여러 가지 수단을 개발했다.
이태준은 단편소설 1939년 발표된 단편소설 '고향'에서 고향 얘기로 검열관의 주의를 흩뜨린 다음 마지막에 등장한 '이국의 밤경치'라는 단어를 통해 일본을 '이국'으로 표현했다.
이기영은 '일본'이나 '일본말'이라는 용어를 써야 할 경우에 '일본내지인' '일본내지어'라는 말을 썼다.
이는 금지어인 '일본'과 권장어인 '내지'를 붙여 한 단어로 만들어 검열을 우회하려고 했던 것.
심훈은 '고국'이라는 단어가 삭제되자 '고향'으로 바꾸었고 이태준, 박세영, 이기영 등은 일본 연호를 사용하는 것을 피하려고 작품의 탈고 일자나 저자 서문을 육십갑자로 표현했다.
김동인은 검열에서 저촉당할 가능성이 높은 내용을 여기저기에 나눠 배치하기도 했다.
심포지엄을 주최한 정근식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일제시대 자료들 상당수는 검열을 거친 것이므로 지금과는 다른 시각으로 해석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장원재기자 peacechao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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