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지휘봉은 ‘인생’을 연주… ‘뉴욕필’ 내한공연을 보고

  • 입력 2006년 11월 17일 03시 06분


뉴욕필은 역시 뉴욕필이었다. 미국 최고(最古)의 오케스트라일 뿐 아니라 정치, 경제의 중심도시로서의 뉴욕의 상징성 때문일까. 뉴욕필의 내한 공연이 열린 15일 밤 서울 예술의 전당엔 국내외 정재계 거물급 인사들이 대거 몰려들어 사교장을 방불케 했다.

청중의 시선은 지휘자 로린 마젤에게로 향했다. 9세 때 대학오케스트라 지휘를 시작으로 60여 년간 세계 최고의 오케스트라들을 이끌어 온 마젤의 암보 능력은 76세가 된 오늘에도 살아있었다. 젊은 시절보다 지휘 동작은 작아졌지만 나이가 믿기지 않게 드보르자크의 ‘카니발’ 서곡부터 라흐마니노프, 베토벤 교향곡 3번 ‘영웅’에 이르는 전곡을 뛰어난 암보 능력으로 지휘해 냈다.

라흐마니노프의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랩소디’를 협연한 피아니스트 조이스 양은 매우 밝고 자신감 넘치는 당찬 성격의 소유자였다. 라흐마니노프를 명쾌한 타건으로 연주했는데 끊임없이 웃는 무대 인사도 무척 개성적이었다. 아직 다채로운 색깔을 갖추진 못했지만 앙코르 곡인 쇼팽의 가곡 ‘나의 기쁨’에서는 라흐마니노프 연주 때와는 전혀 다른 색채를 들려줬다.

2부에서 연주된 베토벤의 ‘영웅’은 극단적인 템포와 역동성을 강조하는 대신 템포를 자유자재로 조절하며 유려하고 장중한 선율이 두드러졌다. 마젤이 해석한 ‘영웅’은 ‘젊고 패기 넘치는 영웅’이 아니라 인생의 희로애락을 모두 겪은 ‘부드러운 내적인 영웅’이었다. 8세 때 신동 지휘자로 데뷔해 2009년 뉴욕필 은퇴를 앞두고 있는 마젤 자신의 모습이 오버랩되는 느낌이었다.

연주를 마친 후 바그너의 악극 ‘뉘른베르크의 마이스터징어’ 서곡이 앙코르로 연주됐는데 베토벤 ‘영웅’ 같은 용맹스럽고 기개 넘치는 곡의 다음 곡으로 매우 빼어난 선택이었다. 두 번째 앙코르도 바그너의 악극 ‘로엔그린’의 3막 전주곡이었는데 30세에 화려하게 바그너 페스티벌인 바이로이트에 입성했던 젊은 시절 마젤의 모습이 떠오르는 장면이었다.

첫날 공연에서 다소 피로감을 드러냈던 연주자들은 16일 베를리오즈 ‘환상’ 교향곡에서 다이내믹하고 화려한 연주로 뉴욕필의 진면목을 보여 주었고 특히 오보에와 호른 등 목관연주자들의 뛰어난 기량이 돋보였다.

장일범 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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