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린 마젤 “뉴욕필도 살아 남으려면 혁명적 노력을…”

  • 입력 2006년 11월 12일 20시 24분


"뉴욕필은 150년간 훌륭한 전통을 쌓아 오면서 세계 최고의 오케스트라 중의 하나가 됐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매우 빠르게 변화하고 있습니다. 뉴욕필이 21세기에도 살아 남으려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혁명적 노력이 필요합니다."

미국 최고(最古)의 오케스트라 뉴욕 필하모닉의 지휘자 로린 마젤(70) 씨. 15~16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내한공연을 앞두고 일본 순회공연 중인 그를 10일 오후 일본 도쿄 오페라시티 극장에서 만났다. 그는 칠순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코다이의 '갈란타 무곡', 베토벤 교향곡 3번 '영웅' 등을 춤을 추듯 열정적인 몸짓으로 뉴욕필 고유의 투명하고 울림있는 사운드를 이끌어내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마젤 씨는 인터뷰에서 "지금까지는 사람들이 자신의 집에서 나와 뉴욕필의 '집'(콘서트홀)으로 찾아왔지만, 이제는 뉴욕필이 집을 떠나 사람들이 살고 있는 장소로 찾아가야 한다"고 말문을 뗐다.

○ 모든 세대를 위한 음악(Music for All Ages)

로린 마젤 씨와 뉴욕필 단원들은 바쁜 일본 순회연주 도중에도 8일 낮 도쿄의 난잔(南山) 초등학교를 찾았다. 비영리단체인 '음악이 있는 삶' 주최로 열린 음악교육 심포지엄에서 뉴욕 필의 연주자들은 교사와 학생들을 위해 작은 음악회를 열었다.

이것은 바로 '모든 세대를 위한 음악'(Music for All Ages)을 캐치프레이즈로 내건 뉴욕필의 대중화 전략에서 나온 것. 정기연주 외에도 3세부터 참여할 수 있는 '영 피플스 콘서트', 12~17세 청소년을 위한 'Phill Teens', '센트럴파크 음악회', '학교 음악회' 등 1년에도 수차례 찾아가는 음악회를 갖는 뉴욕 필은 1922년 라디오를 통해 처음으로 연주실황을 전국에 생방송했고, 최근에는 미국 오케스트라로서는 최초로 인터넷 'iTunes'를 통해 연주의 다운로드 서비스를 시작했다.

"뉴욕 필은 가능한 많은 사람들에게 음악을 즐길 수 있는 기회를 주겠다는 공약을 실천해왔습니다. 인터넷 생중계는 누구든지, 언제나, 쉽고, 싸게 뉴욕필의 음악을 즐기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전자 음향과는 구분되는 실황 연주가 인터넷을 통해 효과적으로 전달되는 최첨단 기술이 접목된다면 전 세계적인 호응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미국의 자존심' 뉴욕 필은 1842년 미국에서 최초로 설립된 오케스트라. 피에르 불레즈, 레너드 번스타인, 주빈메타 등 명 지휘자들이 지휘를 맡아왔으며 마젤 씨는 2002년 9월부터 음악감독 겸 지휘자로 활동하고 있다.

"뉴욕필의 힘은 다양성을 조화시키는 '잠재력'에 있습니다. 뉴욕필에는 150년간 구스타프 말러, 아르투르 토스카니니 같은 훌륭한 역대 지휘자와 2000여 명의 전 세계 각국 출신의 역대 멤버들이 서로 상호작용하며 가꿔온 앙상블이 어마어마한 잠재력입니다. 어떤 세계적인 솔로이스트와 협연하더라도 뉴욕필의 지휘자와 단원들과 만들어내는 음악은 전혀 새로운 것입니다."

○ 음악은 인간 본성을 계발시키는 언어

"클래식 음악 분야에서 젊은 영재를 키워나가는 한국의 교육시스템은 아마도 세계 최고임에 틀림없다. 8살에 불과한 한국의 영재가 라벨, 하이든, 쇼팽을 연주하는 것을 들어보라. 그들은 이미 프로페셔널한 연주를 할 준비가 다 돼 있다!" (마젤 씨의 홈페이지 '음악감독의 일기', 2004년 10월19일)

마젤 씨는 5세 때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하여 8세의 나이에 아이다호 대학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슈베르트의 '미완성 교향곡'을 지휘했다. 그는 처음 접하는 곡도 사진을 찍은 듯 악보를 보지 않고 암보로 지휘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이에 대해 "연극배우가 대본을 손에 들고 연기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신동' 음악가 출신인 그는 현재 영재 음악가 발굴과 청소년 음악교육을 위한 '샤토빌 재단'을 운영하고 있기도 하다.

"샤토빌 재단에서는 청소년들에게 실내 오케스트라를 지휘하고, 오페라 무대감독으로 참여할 기회를 주면서 스스로 깨닫게 합니다. 또한 포크송을 통해 미국의 역사를 가르치기도 하지요. 음악은 인간 본성을 계발시키는 하나의 언어이자 젊은 세대가 과거세대를 이해하는 도구입니다."

이번 음악회도 음악영재 교육에 관심이 컸던 고(故) 박성용 금호아시아나그룹 명예회장이 2004년 공연 당시 마젤씨에게 특별 요청해 이뤄진 것. 이 인연으로 마젤 씨는 한국의 젊은 연주자에 대해서도 큰 관심을 갖고 있다. 2004년에는 순수 국내파 피아니스트 손열음(19) 양을 협연자로 내세운 데 이어, 이번에는 반 클라이번 국제콩쿠르에서 준우승한 피아니스트 조이스 양(19) 양과 협연할 계획이다.

두 사람에 대한 느낌을 물었더니 그는 "예술가에겐 각자의 특성이 따로 있다"며 말을 아꼈다. 그러면서도 마젤 씨는 "올해 19세 밖에 안 됐지만 조이스 양의 기술적 음악적인 감성에 매우 깊은 인상을 받았다"며 "무한한 발전을 기대할 수 있는 연주가"라고 말했다.

▽공연 정보=15,16일 오후 8시 서울 예술의전당 △15일 드보르작 '카니발 서곡', 라흐마니노프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랩소디(피아노 조이스 양), 베토벤 교향곡 3번 '영웅' △16일 브람스 '하이든 주제에 의한 변주곡', 코다이 '갈란타 무곡', 베를리오즈 '환상적 교향곡' △3~25만원. 02-6303-1919

전승훈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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