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황호택]‘강안 남자’

  • 입력 2006년 11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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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석간신문에 ‘강안 남자’라는 소설이 5년째 연재되고 있다. 본보에 ‘식객(食客)’이라는 만화를 그리는 허영만 화백은 보통날은 ‘강안 남자’를 읽지 않다가 ‘조철봉’(주인공)이 땀 흘리는 삽화가 나오는 날만 읽는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 종일 화실에 틀어박혀 스케치를 하다가 잠시 조철봉의 염사(艶事)로 머리를 식히는 것이다. 그것은 삶에 윤활유를 공급하는 판타지이자 권태로운 미각에 자극을 주는 초콜릿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청와대가 여직원의 수치심을 유발한다는 이유로 ‘강안 남자’를 연재하는 신문의 구독을 중지했다. 신문 논조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했더라면 차라리 솔직했을 것이라고 작가 이원호 씨는 말했다. 청와대의 절독(絶讀)은 공직사회에 그 신문을 보지 말라는 신호를 보낼 수 있다. 청와대 여직원이 우리 사회의 표준도 아니다. 전문직 숙녀들 중에도 ‘강안 남자’의 애독자가 더러 있다.

▷필자가 경기 고양시 일산에 살 때 호수공원에서 산책을 하다 속보(速步)로 운동을 하는 이 씨를 가끔 만난 적이 있다. 신문 잡지에 연재소설 몇 개를 동시에 쓰자면 체력 관리를 잘해야 할 것이다. 이 씨는 “조철봉이 너절한 변태행위를 한 적은 없다. 국정감사에서 지적이 나오기에 20일 동안 섹스 장면을 안 넣었더니 아파트 경비원까지 불만이더라”고 필자에게 하소연했다. 필자는 ‘강안 남자’보다는 나른한 식후(食後)의 토막 잠을 더 즐긴다. 그렇지만 한풀 꺾인 중년의 대리만족이나 ‘상상 탈선’까지 규제하자고 떠드는 도덕군자나 요조숙녀를 좋아하지 않는다.

▷정청래 의원은 ‘강안 남자’를 연재하는 신문 제호 옆에 ○19라는 성인물 표시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외설 규제는 나라마다, 매체의 특성에 따라 다르다. 활자매체는 사진이나 영화 같은 영상매체에 비해 자극성이 떨어져 외설 규제에서 배제하는 나라도 있다. ‘강안 남자’는 직장인들이 읽는 신문소설이다. 청와대나 국회의원이 정작 신경 써야 할 곳은 청소년에게 무방비로 방치돼 있는 인터넷 동영상과 만화의 외설이 아닐까.

황호택 논설위원 ht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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