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선비들의 지란지교… ‘거문고줄 꽂아놓고’

  • 입력 2006년 9월 9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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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준이 그린 ‘산방전별도’. 사진 제공 돌베개
신명준이 그린 ‘산방전별도’. 사진 제공 돌베개
◇거문고줄 꽂아놓고/이승수 지음/245쪽·9500원·돌베개

《거문고 줄 꽂아놓고 홀연히 잠에 든 제

시문견폐성(柴門犬吠聲)에 반가운 벗 오는고야

아희야 점심도 하려니와 탁주 먼저 내어라

-김창업-》

소슬바람이 파고드는 가을, 그대는 무엇을 그토록 그리워하는가. 무슨 외로움이 그리 사무쳐 사람들과 부대끼는 도시 속에서 황금물결 치는 들녘과 단풍으로 붉게 타오르는 산 정상을 꿈꾸는가. 무엇이 그리 억울해 한잔 술을 부여잡은 채 새벽이슬에 젖는가.

여기 그대의 그리움, 외로움, 억울함의 이유를 풀어주는 글이 있다. 그대 영혼의 나침반을 파르르 떨게 만드는 존재, 같은 하늘 아래 숨쉬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벅찬 감동을 주는 존재, 눈빛만으로도 그대의 고뇌를 읽어 내는 존재, 그대의 진면목을 아는 지기(知己)를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책에 실린 열두 편의 글에선 그런 지기를 만나고 사귀었던 우리 옛사람의 우정이 빚어낸 황홀한 정경이 펼쳐진다. 그것이 더욱 각별한 것은 엄격한 신분질서의 지배를 받던 시대를 살면서도 신분과 나이, 성별과 국경, 사상과 정치노선을 뛰어넘었기 때문이다.

고려 최후의 충절과 조선 건국의 입안자로 가는 길이 갈렸던 포은 정몽주와 삼봉 정도전이 서로의 사람됨을 깊이 사모했음을 보여주는 글은 우리 선비의 웅숭깊은 내면풍경을 드러낸다. 삼봉은 동갑내기 포은을 ‘도덕의 종장이시고, 환한 문채풍류의 으뜸’이라며 스승의 예로 대했고, 포은은 내치와 군사 능력을 겸비한 최고의 인재로 삼봉을 아끼고 사랑했다.

저자는 망국의 지사(志士)와 개국의 재사(才士)라는 대조적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두 사람 모두가 ‘시선을 천년부동의 태산교악에 두고 가슴은 천년부절의 장강대하와 호흡하는’ 이 땅에 보기 드문 호사(豪士)였음을 그들의 시문을 통해 보여준다.

병자호란 때 강화론을 펼친 최명길과 주전론을 펼친 김상헌은 또 어떤가. 우리는 1637년 최명길이 쓴 굴욕적 외교문서를 김상헌이 갈가리 찢어버리자, 최명길이 “대감은 이를 찢었지만, 우리는 이를 주워야 합니다”며 편지조각을 주워 모았다는 장면만 기억한다. 그러나 5년 뒤인 1642년 청의 수도 선양(瀋陽) 객관에서 두 사람이 다시 조우한 장면은 더욱 가슴 뭉클하다. 따로따로 끌려왔다가 한 장소에서 만난 두 사람은 담배연기 자욱한 객관 골방에서 시문을 교환하면서 서로에 대한 불신을 씻고 상대를 인정하는 화이부동(和而不同)의 경지를 펼쳐 내기 때문이다. ‘연려실기술’은 이때 김상헌이 ‘이로부터 양대의 우의를 찾아, 문득 백년의 의심을 푸노라’라는 말을 남겼다고 기록하고 있다.

나의 진면목을 알아주는 지기와의 우정에서는 시간도 공간도 중요하지 않다. 피비린내 나는 현실정치를 피해 속리산에 은거한 대곡 성혼과 지리산에 은거한 남명 조식은 장년이 된 이후 딱 한 차례 만났을 뿐인데 편지를 들고 온 사람의 눈빛에 비쳤을 벗의 모습과 행동을 읽어 낼 만큼 서로를 흠모했다.

안정복은 불혹을 넘겨 성호 이익을 처음 만난 뒤 18년 동안 세 번 만난 것이 전부였지만 성호가 보낸 편지의 서체 변화를 통해 스승의 건강상태를 읽어 냈고, 성호는 그런 안정복을 동등한 벗으로 대접했다.

그들에게는 ‘가까이 두고 오래 사귄다’는 뜻의 친구보다는 ‘철저하게 혼자가 됐을 때 내 고독을 감싸주는 울타리이며, 내 마지막 자존심을 지켜주는 보루’로서 지기라는 표현이 더욱 어울린다. 저자는 이를 좋은 친구는 마음 속 빈 공간을 채워주는 존재가 아니라 그 빈 공간을 간직하고 견디도록 도와주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풀어 낸다.

실로 이런 여백의 우정을 담아 낸 최고의 절창은 매월당 김시습과 추강 남효온의 우정일 것이다. 세조의 왕위찬탈에 분개해 평생 세상과의 불화를 선택한 김시습과 그보다 19세나 어리지만 단종 생모의 복원을 주창하는 상소문으로 평생 벼슬길이 막혀 술독에 빠져 지내다 38세에 불우한 생을 마감한 남효온. 두 사람의 호를 빌려 ‘겨울산과 가을강의 사귐이자 고독과 허무의 대화’라고 절묘하게 묘사된 그들의 우정에는 현 없는 거문고를 뜻하는 ‘무현금’과 종이에 그린 종을 뜻하는 ‘무성종’이 등장한다. 김시습이 남효온에게 무현금을 보내 달라는 편지를 보내자 남효온이 작은 종그림을 그려 보낸 것이다. 무현금은 마음을 통해 그 연주를 들어야 하고, 무성종 역시 마음의 울림을 통해서만 들을 수 있다. 외로운 영혼의 공명으로 이처럼 맑으면서 애절한 파장을 빚어낸 경우가 또 있을까.

딱딱한 역사 이면에 숨어 있는 내용도 아름답지만 이를 풀어 가는 저자의 삶에 대한 통찰이 깊이 배어 있는 문장이 눈부시다. 한 구절만 음미해 보자.

“천지간에 고운 것이 사람이고, 사람 중에 고운 것은 말이고, 말 중에 고운 것은 글이며, 글 중에 고운 것은 시라 했다. 시는 다른 게 아니라 마음을 주고받는 가장 고운 소통방식이다.”

온통 고지서와 광고문, 독촉장으로 가득 찬 벗의 우편함에 그대의 육필로 쓴 장문의 편지를 선물하지 않겠는가. 육필의 글이라는 이유만으로 이미 시가 되는 시대가 아니던가.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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