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888년 살인마 잭 첫 범행

  • 입력 2006년 8월 31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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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마 잭(Jack the Ripper).

19세기 말 영국 런던의 밤거리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희대의 연쇄살인범이다. 역사상 최초의 연쇄살인범은 아닐지 몰라도 가장 현대적인 의미의 연쇄살인범 중에선 최초일 것이다.

1888년 8월 31일 오전 4시경 메리 앤 니콜스라는 창녀가 살해된 채 발견됐다. 귀 밑부터 목 아래 부분까지 깊게 절단된 상처에선 아직 피가 흘러 나오고 있었고, 시체의 눈은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살인마 잭의 첫 범행으로 기록된 사건이다. 이후 10주에 걸쳐 네 차례나 살인마 잭의 소행으로 보이는 사건이 이어졌다. 그 외에도 수십 건의 비슷한 사건이 발생했지만 런던 경찰은 일단 5건만을 수사대상으로 압축했다.

살인마 잭이란 별칭은 한 통신사에 배달된 편지에서 유래했다. ‘여자들의 귀를 잘라버리겠다’는 내용이 있었고, 보낸 이는 ‘살인마 잭’이었다. 얼마 뒤 편지 내용대로 한쪽 귀가 잘린 시체가 발견되면서 진짜 범인이 보낸 편지로 여겨졌다.

이 밖에도 경찰과 신문사엔 스스로 살인마 잭을 자처하는 편지가 수백 통이나 배달됐다. 신장 반쪽이 담긴 작은 상자도 배달됐다. 동봉한 편지엔 ‘그 절반은 튀겨 먹었다’고 적혀 있었다.

살인마 잭의 표적은 주로 창녀였다. 뒷골목에서 목을 졸라 기절시킨 뒤 신속하게 칼로 여자의 목과 자궁, 신장을 ‘해부’했다. 정확한 인체 지식을 바탕으로 정교하게 이뤄졌다는 점에서 런던 경찰은 해부학에 능한 인물로 수사망을 좁혔다.

하지만 끝내 범인의 정체는 밝혀지지 않았다. 그의 정교한 살인행각을 당시의 조악한 법의학이 따라잡을 수 없었던 것이다. 어쨌든 이 사건 이후 경찰의 과학적 수사기법이 엄청난 발전을 이루는 계기가 된 것도 사실이다.

살인마 잭 케이스는 100년이 훨씬 넘도록 끊이지 않는 호기심과 음모론의 대상이 됐다. 살인마 잭을 연구하는 학문(Ripper-ology)까지 생겨났다. 영화 ‘프롬 헬’은 수많은 가설 중 그 배후가 영국 왕가이고 이를 실행하는 것이 비밀결사 프리메이슨이라는 음모론을 다뤘다.

수많은 소설과 논픽션으로 다뤄졌고, 1990년대에만 정기간행물 6종이 발행됐다. 인형과 조각상도 만들어졌고, 밥 딜런은 ‘살인마 잭’을 타이틀로 음반을 내기도 했다. BBC 히스토리매거진은 올해 ‘역사상 최악의 영국인’으로 살인마 잭을 선정했다.

이철희 기자 klim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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